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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Nov 12. 2020

<사랑을 카피하다>(2010)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이란의 시네 아티스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2010년 처음으로 이란을 벗어나서 찍은 이 달달한 제목의 영화 원제는 좀 딱딱하게 번역한다면 '원본대조필(Certified Copy)'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영화의 키워드는 '카피(복사)'이다. 주인공 제임스 밀러가 쓴 책의 제목은 <기막힌 복제품> 정도가 될 것이고, 그 책의 부제는 '하나의 훌륭한 복제품은 열 개의 원본 못지않다'라고 할 수 있다. 원본보다 복제품이 훌륭할 때 원본의 의미는 무엇이고 복제품의 의미는 또 무엇이 되는가? 모나리자도 결국은 조콘다 부인을 복제한 것에 불과하다. 그 신비한 미소의 원본은 조콘다 부인의 것인가 아니면 다빈치의 것인가? 이 영화는 예술 작품에 대한 이러한 문제제기를 삶 전체로 확장시킨다. 인간이란 결국 앞선 인류의 DNA 복제이지 않은가? 영화는 삶 가운데서도 '사랑'의 정체를 '복제'라는 키워드로 해부한다.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를 다 보고 나면 누구나 혼돈에 빠진다. 영화의 중간쯤부터 이미 헷갈리기 시작한다. 주인공 엘르(줄리엣 비노쉬)와 작가 제임스 밀러는 처음 만나서 하루를 보내다가 후반에 가서는 부부의 흉내를 내는 것인가? 아니면 원래 이들은 부부였는데 처음에 부부가 아닌 척한 것인가? 아마도 많은 관객은 후자일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살펴보면 위 두 가지 모두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감독은 미묘한 트릭으로 관객을 속인 것이다. 즉 이들은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부부가 아니었고 후반부에는 부부가 된다. 물론 이는 실제상황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가상의 설정이다. 한국의 관객은 감독의 트릭을 제 맛으로 느낄 수가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실제 영화 속에서는 구분되지 않는 영어나 프랑스어 대화가 번역자에 의해 인위적으로 존대어에서 반말로 젼환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의 46위에 올라가 있지만 평자에 따라서 호오가 많이 엇갈리고 있다. 그것은 감독의 트릭에 대해서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의 분위기는 자못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선셋/미드나잇> 3부작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거의 두 연인의 대화만으로 영화가 전개되는 <비포 선셋>과 사랑의 실체가 까발려지는 <비포 미드나잇>을 하나로 묶었다고 표현하면 그럴듯할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알 수 없는 실체와 '카피'라는 키워드는 이 영화에서 어떻게 얽혀있는 것일까?


엘르와 밀러는 결혼 15년의 생활 이후 사랑에 대한 관점이 확연히 다르다. 여기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여자가 원하는 사랑과 남자가 생각하는 사랑이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라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이 제시하는 해법은 다르다. 사랑은 실체가 없다. 즉 원본이 없는 것이다. 단지 그 복제품을 가지고 씨름할 따름이다. 복제품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사랑은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침투해 들어오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형체가 없는 것이다. 감독이 영화의 전반부에는 처음 만나는 남녀로 설정했다가 후반부에는 15년의 부부관계를 유지한 별거 중인 사람들로 설정한 이유는 앞서 말한 <비포> 3부작에서 가슴 떨리는 <비포 선라이즈>와 서로 질려버린 <비포 미드나잇>을 한 영화에 담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두 가지 형태의 관계는 결국 하나이며 실체 없는 '사랑'에 대한 다른 복제품이라는 결론을 내리려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여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치고는 제법 짜릿짜릿하고 재미의 요소가 많이 가미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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