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강읽기

세 번째 책 <검은 사슴>을 펴 들며...

by 로로

"얼굴이 오래된 귤껍질같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11쪽)


이 문구를 보며 유홍준 교수가 최근 유튜브 강의에서 한 말이 생각이 났다. 글을 잘 쓰려면 형용사를 쓰는 대신 가능한 비유를 쓰라는 말. (지금 내 방의 쓰레기통에는 여러 귤껍질들이 오그라들어 뒤엉켜 있다.)


나는 하드커버 싸개지가 있는 책을 읽을 때면 가능한 오랫동안 싸개지를 벗기지 않고 읽다가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벗겨 책꽂이 책 위에 던져놓고는 한다. <검은 사슴>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전개되는 앞부분에서 바로 벗겨버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꿈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의 맨 앞부분 5쪽을 세 번 읽었다. <흰> 만큼이나 독자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데이빗 린치 감독의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 괴이함이란...


"그녀는 마치 주먹밥을 부스러뜨리듯이 내 살을 발라갔다."(13쪽)


이 첫 5쪽을 읽으며 불현듯 위고의 <레미제라블> 앞부분에 장발장이 끝없는 절망의 심연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검은 바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장면으로 무려 10쪽 이상(내 기억으로!) 묘사한 기막힌 글이 떠올랐다. 진짜로 절망의 심연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부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마침내 들쥐 새끼만한 크기로 쪼그라든 나는 은박지처럼 구겨진 가슴을 움켜쥐고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다."(11쪽)


아이쿠~! (계속 이럴 건가?)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 5쪽을 넘어서면 여느 소설처럼 그런대로 싹싹하게 넘어간다.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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