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 1]
품위 있는 자유주의 영화 평론의 대명사인 The Guardian, New York Times, Roger Ebert가 일제히 악담을 퍼부었다. 주제가 무엇이건간에 이 정도의 완성도 있는 영화에 대한 악평은 '영화평'이라기 보다는 '사회정치평'에 가깝다. Rotten Tomatoes 또한 다르지 않다.
그들이 화들짝 놀란 것은 조커라는 슈퍼 악당의 탄생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게 너무 '리얼리스틱' 하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의 악은 순수한 악이어야 한다. 그럴 경우 아무리 악해도 위험하지 않다. 잭 니콜슨이나 히스 레저가 조커로 등장해 그토록 압도적인 악을 탄생시켜도 그 순수한 악은 그들의 정치 사회적 지평에서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아니다.
그러나 호아킨 피닉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분장으로 가려지고, 정신병으로 호도되고, 병적인 웃음으로 뒤틀려도 피닉스가 내뱉는 대사들은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기막히게 폐부를 찌른다. 공공성의 붕괴는 참을 수 있어도 시민성의 타락은 참을 수 없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유주의자들은 이 영화에서 어떤 불안감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현상 2]
한국에서는 무슨 꼼수를 썼는지 폭력성으로 당연히 18금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5세 관람가다. 미국에서도 R등급인데... 한국의 평론가들은 대부분 이 영화에 매우 후하다. 리얼한 악의 탄생이 그리 낯선 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놀랄 현상은 따로 있다. 거울 앞에서 이상한 춤을 1분 이상 추는 이런 영화는 보통 아트시네마관에서나 볼 수 있다. 게다가 암울하고 불쾌한 분위기, 통쾌한 때려부수기가 아니라 눈을 피하고 싶은 섬뜩한 폭력. 아무리 DC와 배트맨을 동원해서 홍보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영화는 10만 관객 모으기 힘들다. 그런데 500만이라니. 이건 도대체 무슨 현상인가? 게다가 20대 남성이 주관객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솔직히 나로서는 이해도 안되고 상상도 안되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먼저 엄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