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강읽기

껍데기에 갇힌 심연

- <그대의 차가운 손>에 대하여

by 로로

1.

우선 이 소설의 제목은 '껍데기'로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껍데기가 음식 메뉴인 '돼지 껍데기'를 쉽게 연상시키기에 어쩔 수 없이 피했으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손'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육체의 한 부분이지만 '그대의 차가운 손'은 다소 낭만적인 느낌을 준다.


2.

육체에 의해 뒤틀리는 인간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전반부 L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카프카의 <변신>이 자꾸 떠올랐다. <변신>이 심리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듯이 <그대의 차가운 손>도 뛰어난 심리소설이라고 볼 수가 있다.


3.

손가락 2개가 잘린 외삼촌, 100킬로 가까이 살이 쪄 출렁거리는 육신을 가진 여인 L, 육손이라서 놀림을 받으며 그것을 지우기 위해 평생 껍데기를 여러 겹 둘러 쓴 여인 E. <채식주의자>만큼이나 낯설고 불편하기에 힘들게 읽어나가야 하지만, 육체에 갇힌 퇴색한 영혼의 울부짖음, 껍데기에 갇힌 그 정체를 알 수가 없는 심연을 놀랍도록 집요하고 은밀하고 치밀하게 묘사하기에 묵직한 감동을 남겨준다.


4.

인간은 어디까지가 자기 자신일까?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껍데기들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그 자신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인물들이 어떻게 껍데기에 파열구를 내어 자신을 찾아가는 실마리를 얻게 되는지에 대한 분투기라고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작가는 결국 인간이 자기 자신의 정체를 알 수가 없으며 그것은 '심연'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심연을 정면으로 바로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뿐이다.


5.

이 작품에서는 유독 사람들의 '미소' 또는 '웃음'에 대해 어김없이 자세히 묘사한다. 그 미소의 형태, 미소의 의미, 미소의 시작과 끝, 미소가 끝난 후의 모습 등. 마치 미소가 얼마나 인간의 감정을 기묘하게 배반하는지를 기꺼이 폭로하겠다는 듯이.


6.

작가는 손에 대해서는 특별한 애정을 가진 듯하다. 주인공 조각가가 손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손만으로 많은 조각 작품을 만드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손만이 인간의 육체 중에 가장 독립적으로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고 대차게 선언한다는 점이다. 외삼촌도, L도, 결국에는 E도 손에서 문제가 비롯된다. 그리고 그 문제에 다가가고 헤집고 찾아내는 것도 조각가의 손이다.


7.

이 작품은 비주얼 측면에서 아주 풍성하다. 그리고 스토리텔링도 긴장감이 넘치게 진행된다. 아주 재능 있는 영화감독이 영화로 만들면 훌륭한 작품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녀의 눈은 마치 내 피부를 꿰뚫고, 내장과 혈관들을 꿰뚫고,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영혼이라는 것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나는 그 얼굴이 탈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얀 탈바가지.

웃고 있는, 딱딱한 탈바가지.

곧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셨으나, 그 섬뜩한 환영 같은 이미지는 내 뇌리 깊숙이 박힌 뒤였다."


"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사람이 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진실이란, 저렇게 추한 것이로구나."


"진실이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 실제로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어난 상황에 가장 잘 맞는 행동을 하고, 그리고 나서 나에게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은 내가 처리해야 한다. .... 결국 내 안에서 진실이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진실을 믿기 때문에 깊이 상처 입으며 쉽게 회복되지 않는 종류의 사람들. 그들의 삶은 나에게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나로 말하면, 착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과 똑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다."


"보이고 들리고 냄새를 풍기고 만져지는 모든 것들의 안쪽을 꿰뚫어보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썼다."


"애정이란 그렇게 쓸쓸한 것이다. 한순간 강렬하게 찾아들지만, 의지할 만한 물건이 못 된다. 곧 변형되고 때로는 퇴색되며 영영 휘발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어떤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 없었다. 다만 애정을 느낀다고 했다. 그것만이 나에게 정직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결코 탄로나지 않는 비밀, 결코 진실이 새어나오지 않는 껍질이었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손은 독자적으로 살아 있으며, 사람이 죽을 때 손은 손으로서 자신들의 죽음을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행복이란 말에 나는 분명한 이물감을 느꼈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듯 그녀는 그 말을 발음했다. 회상에 잠긴 그녀의 얼굴에 어린 백치스런 미소는, 행복보다는 어떤 마비를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라는 단말마의 물음을 들이댔을 때 꺼내 보여줄 수 있는, 진짜 이유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진짜를 보고 싶다면 결국, 심연 앞에 서는 일만이 남는 것 아닐까. 그 텅 빈 심연 속에서 대체 어떤 대답을 건져낼 수 있다는 것일까."


"삶의 껍데기 위에서, 심연의 껍데기 위에서 우리들은 곡예하듯 탈을 쓰고 살아간다. 때로 증오하고 분노하며 사랑하고 울부짖는다. 이 모든 것이 곡예이며, 우리는 다만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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