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강읽기

<작별하지 않는다>

- 4.3을 소설로 쓸 자격

by 로로

어떤 의미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덤이다.

(프로바둑에서는 대부분 덤에 의해 승부가 좌우된다.)


나는 아직 <소년이 온다>를 읽지 않았다.

(아껴 두고 있다.)


한강은 <흰> 이후 다음 작품은 사랑에 대한 소설이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작별하지 않는다>)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329쪽)고 밝혔다.

이 소설이 어떤 의미에서 '사랑'에 대한 지극한 이야기일까?


한강의 작품에는 대부분 작가 자신이 등장한다.

때론 페르소나로, 때론 1인칭 화자로, 때론 더욱 직접적으로.

이 소설에서는 '작가'로서의 한강, '사생활'을 가진 한강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그 꿈을 꾼 것은 2014년 여름, 내가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지 두 달이 지났을 때였다."(11쪽)

이는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작가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이다.


"... 사 년 동안 나는 몇 개의 사적인 작별을 했다. ... 어떤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며 모든 걸 걸고라도 멈추고 싶은 것이었다."(12쪽)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한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반쯤 넘어진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아, 당신처럼.

살고 싶어서 너를 떠나는 거야.

사는 것같이 살고 싶어서."(17쪽)

이것은 남편과의 작별하고 싶지 않은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임이 틀림없다.


아마 소설의 첫 부분에 나오는 죽음 준비 이야기도 사실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각도의 오차로 지구를 비껴 날아가듯이...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15쪽)


<소년이 온다>를 집필할 때 잠시 눈길을 주었던 또 다른 학살의 이야기가 작가를 괴롭혔다.

수 백 명이 아닌 수만, 수십만 명에 대한 학살의 이야기.

도로가 아닌 구덩이, 바다, 폐광에서 자행된.

그로 인한 악몽으로 한강은 시달렸다.

그 꿈을 떨쳐내기 위해 작가는 이 소설을 써야만 했다.

그래서 이 소설을 '덤'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작품은 르포르타주 형식을 취하고 있다.

현장을 따라간 르포가 아니라

현장을 담은 신문 기사를 따라가는 간접적인 르포.

그렇기에 어쩌면 다소 무미건조한 보고가 될 수도 있었다.

한강은 4.3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을 치밀하게 천착하지 않았다.

4.3을 둘러싼 에피소드로 극적인 작품을 창조한 것도 아니다.

당연히 장대한 역사소설은 더욱 아니다.

4.3을 배경에 깔고 어떤 창의적인 스토리를 만든 것도 아니다.


소설 속의 4.3 이야기는 가감 없이 신문 스크랩을 잘 정돈한 형태이다.

마치 영화라면 역사적 실제 사진을 끼워 넣는 식이다.


이 작품을 르포가 아니라 소설로 만든 것은 순전히.

4.3에 다가가야만 하는 작가 자신.

그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

진실을 찾기 위해 주인공인 내가 죽음의 변곡점을 겨우 넘어가야만 하는 과정.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막는 폭우, 폭설 그리고 아스라한 촛불.

3분마다 무서운 통증을 이겨 내야만 하는 또 다른 등장인물 인선.


한강은 이 소설을 쓸 '자격'을 얻기 위해,

도서관에서 신문과 자료를 넘기는 자신을 초월하기 위해,

자신이 온몸으로 부대끼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마치 인선의 어머니가 글자를 꾹꾹 눌러서 모든 획을 꺾어서 쓰듯이,

소설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책임을 방기 하지 않기 위해,

소설 초반부에 한강 자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럼에도 한강 자신은 순전히 누군가에 빚지고 있음을 말한다.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기억'을 간직하고, 추적하고, 보듬은

그래서 지금은 모든 기억을 잃고 몸뚱이만으로 말하는 시골 아낙.

인선의 어머니의 존재.

한강이 던져 준 꿈 이야기를 계기 삼아

다시금 역사적 실체를 찾아 나서고

그만두자는 한강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손가락이 잘리면서까지

기어이 끝 모를 고통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인선

오로지 작별하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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