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강읽기

밥 딜런 이후 두 번째 노벨문학상
싱어송라이터 한강

-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에 수록된 9곡의 노랫말

by 로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고통스럽게 읽은 독자라면, 한강의 쉽고 편안한 노랫말로 마음의 평안을 얻기를 권한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매가리가 너무 없어서 에이~ 하고 말았는데 자꾸 들으니 단순한 곡조와 편안한 가사 때문에 중독성이 있네.


https://www.youtube.com/embed/t2-OOerzuZU?si=IZOPwOhVBjcoTu9U



[12월의 노래]


눈물도 얼어붙네 너의 뺨에 살얼음이

내 손으로 녹여서 따스하게 해 줄게

내 손으로 녹여서 강물 되게 해 줄게

눈물도 얼어붙는 십이월의 사랑 노래


서늘한 눈꽃송이 내 이마에 내려앉네

얼마나 더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얼마나 더 먼 길을 헤매어야 하는지

서늘한 손길처럼 내 이마에 눈꽃송이


모든 것이 사라져도 흘러가고 흩어져도

내 가슴에 남은 건 따스했던 기억들

내 가슴에 남은 건 따스했던 순간들

모든 것이 흩어져도 가슴속에 남은 노래


[내 눈을 봐요]


나 좀 보세요

내 얼굴을 봐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창밖엔 비가 내려요

온 세상 흠뻑 적시고

우리들 찢긴 가슴을

어루만져 주네요


내 눈을 봐요

내 얼굴을 봐요

안아주기에도

우리 삶은 너무 짧아요


우리들 가슴속에도

찬비가 내릴 때 있죠

그 비가 그칠 때까지

같이 걸어가봐요


내 눈을 봐요

내 얼굴을 봐요

안아주기에도

우리 삶은 너무 짧잖아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나무는]


나무는 언제나 내 곁에 있어

하늘과 나를 이어주며 거기

우듬지 잔가지 잎사귀 거기

내가 가장 나약할 때도


내가 바라보기 전에

나를 바라보고

내 실핏줄 검게 다 마르기 전에

그 푸른 입술 열어


언제나 나무는 내 곁에 있어

우듬지 잔가지 잎사귀 거기

내가 가장 외로울 때도

내가 가장 나약할 때도

음~ 음~


[휠체어 댄스]


물은

이제 습관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게

나를 다 삼키진 않았죠


악몽도

이제 습관이 되었어요

가닥가닥 온몸의 혈관으로

타들어오는 불멸의 밤도

나를 다 먹어치울 순 없어요


보세요

나는 춤을 춘답니다

타오르는 휠체어 위에서

어깨를 흔들어요

오, 격렬히


어떤 마술도

비법도 없어요

단지 어떤 것도 날

다 파괴하지 못한 것뿐


어떤 지옥도

욕설과

무덤

저 더럽게 차가운

진눈깨비도, 칼날 같은

우박 조각들도

최후의 나를

짓부수지 못한 것뿐


보세요

나는 노래한답니다

오, 격렬히

불을 뿜는 휠체어

휠체어 댄스


[새벽의 노래]


새벽에 눈을 떠

하늘을 보았어

어둠이 가시고

푸른빛이 번졌어


구름은 뭉클뭉클 피어나

어디로 흘러 떠나가는지

하나둘 깨어나는 나무들

가지를 뻗어 올렸어


이리 아름다운 세상이

내 곁에 있었나

두 눈에 맺히는

네 눈썹 같은 조각달


나 이제 푸른 날개 펼치고

저들을 따라 날아오르네

푸르른 불꽃같은 나무들

가지를 뻗어 올릴 때

살아 있다는 건 뭘까

살아간다는 건 뭘까

대답할 필요 없네

저 푸른 불꽃처럼


[햇빛이면 돼]


나의 꿈은 단순하지

너와 함께 햇빛을 받으며

걷는 거지 이 거리를

따사롭게 햇빛을 받으며


햇빛! 바람과 함께 춤을 추는 거지

햇빛! 너의 손잡고 걸어가는 거지

햇빛! 너의 눈 보며 웃음 짓는 거지

눈이 부실 때면 눈 감는 거지


나의 꿈은 평화롭지

너와 함께 햇빛을 받으며

쉬는 거지 한가롭게

따사롭게 햇빛을 받으며


햇빛! 우리에게는 그거면 충분해

햇빛! 시린 뼈까지 덥혀줄 온기가

햇빛! 우리에게는 그거면 충분해

한나절 따스한 햇빛이면 돼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안녕이라 말해본 사람

모든 걸 버려본 사람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

그러나 살아야 할 시간

살아야 할 시간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모든 걸 버렸다 해도

위안받지 못한다 해도

당신은 지금 여기

이제야 살아야 할 시간

살아야 할 시간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누가 내 손을 잡아줘요)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이제 내 손을 잡고 가요)


[가만가만, 노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꿈을 꾸고 아침에 눈 뜨고

걷고 뛰고 몸부림치는 동안


눈물

눈물

눈물

눈물

감추는 동안


새벽에 눈을 떠

문득 두리번

두리번거리는 동안


해는 뜨고 또 잠은 찾아오고

가슴 깊이 묻어놓은 노래

가만가만 입속으로 부르네


눈물

눈물

눈물

눈물

흘러내리네


나나나...

눈물

눈물

눈물

눈물

흘러내리네

흘러내리네


[자장가]


잘 자라 우리 아기

착하게 잘 자라

달도 자고 별도 자고

집도 자고 길도 자고


엄마는 내 곁에

언제나 있단다

아침이 올 때까지

좋은 꿈 속에


잘 자라 우리 아기

예쁘게 잘 자라

달도 자고 별도 자고

집도 자고 길도 자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