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강읽기

한 사람의 두 측면

- <검은 사슴>을 읽고

by 로로

1인칭 주관적 시점과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오가면서 자못 추리소설 같은 흥미까지 곁들인 이 소설의 완벽한 플롯 전개와 한강의 트레이드 마크인 개인의 아픔과 사회 역사적 고난을 자수처럼 엮어 놓은 주제 의식이 돋보인다.


한강은 예술 영화 시네필임이 틀림없다. (종종 작품 내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의 소설은 고급스러운 예술 영화가 종종 선보이는 복잡하고 난해하지만 절묘하게 틀 지워진 편집 기법을 사용한다. <검은 사슴>에서는 영화의 비다이제틱(Non-diegetic) 요소를 교묘하게 사용한다. 비다이제틱이란 관객은 알지만 영화 속의 주인공은 알거나 듣지 못하는 영화의 요소(특정한 줄거리, 배경음악 등)를 말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검은 사슴 이야기'는 소설 속 주인공 중에서 사진작가 '장'과 기억상실에 약간의 정신적 질환을 가진 의선만이 알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1인칭 화자인 인영은 이 이야기를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가장 은밀한 기저의 외침이다. 밝은 세상에 몸 담은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검은 사슴>의 중심이 되는 골격은 하염없는 "찾아가기"이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명윤은 몇 차례 계속되는 여동생의 가출 때문에 끊임없이 찾아다녔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임'씨(의선의 아버지)는 정신이 나간 아내가 집을 나가자 어린 아들 딸을 남겨두고 아내를 찾기 위해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 작품의 메인 줄거리 역시 인영과 명윤이 사라진 의선을 찾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기며 보내는 몇 일간의 이야기이다. 사라진 사람, 사라지는 사람, 그리고 그들을 다시 찾아가는 사람. 그리고 그러한 찾아가기는 결국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몸짓이다.


한강의 작품은 거의 자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사건을 관찰하거나 참여하는 주체로서의 '나'인 경우도 있지만 <검은 사슴>은 '나'를 해부하는 작품인 것으로 보인다. 소설의 두 주인공인 인영과 의선은 '나' 한강의 두 측면, 즉 한강의 페르소나를 둘로 나누어 거울 양면에 배치 혹은 중층화하였다고 생각된다.


만약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포스터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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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고 냉정하고 책임감이 강하지만 어딘지 모를 나약함을 숨긴 채 누구와도 잘 섞이려 하지 않는 인영은 '대자적 인간'으로서의 한강이다. 이런 한강의 삶에 의선은 날카롭게 침투해 들어온다. 그것도 잠시. 그러나 인영 자신의 '대자적 인간'을 온통 흔들어 놓는.


"앙상하고 흰 팔을 길게 뻗어, 그녀(의선)는 마치 주먹밥을 부스러뜨리듯이 내 살을 발라갔다.

내 몸이야, 그만둬.

눈물 위로 내던져지며 나는 소리치려 안간힘을 썼다.

...

의선의 벌거벗은 몸이 겅중겅중 멀어졌다."

(<검은 사슴> 13쪽)


대자적 인간은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가지며 자기 스스로를 규정하고 그런 규정에 따라서 삶을 조직해 나간다. 하지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섬찟한 의심과 함께 자아가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철저하게 '즉자적 인간'인 의선이 잠깐 인영의 삶을 툭 건드리는 것만으로 인영은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이고 어떻게 현재의 자기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모르며 그러한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을 '즉자적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각에 앞서 행동이 있고, 어떠한 자기규정도 없는, 날 것으로의 실존. 그것이 의선이다. 즉 한강 자신이 또 다른 모습으로 자기를 투영한 존재이다. 사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두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한강을 그것을 <검은 사슴>을 통해 적나라하게 해부한 것이다.


인영은 빛에서 어둠을 응시하고 그 어둠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의선은 어둠에 온전히 갇혀있으면서 빛을 본능적으로 갈망하며 빛을 향해 알몸으로 뛰쳐나가려 하지만 결국은 '검은 사슴'이 빛을 만났을 때처럼 액체로 녹아내리며 존재 자체를 상실한다.


다시 쉽게 말하자면 인영은 한강의 의식 세계이고 의선은 한강의 무의식 세계이다. 이 두 세계는 가끔 만나서 부딪히면서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만약 무슨 의미가 있다면...




*<검은 사슴>에서 가장 다이내믹하고 맛깔난 부분은 어떤 의미에서는 소설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약초꽃 피는 때'이다. 소설 전체에서 의선은 항상 피관찰자로만 나오는데 이번에는 의선 자신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그런데 문제는 의선이 약간 정신적 장애에 기억상실증까지 가졌다는 점이다. 그런 의선의 시점에서 서술을 하니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2020년 영화 <더 파더>가 상기된다. 이 영화는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하는 치매환자 아버지의 시점에서 플롯이 전개되며 그로 인해 그가 겪는 온갖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각본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 약간 의아한 점은 마치 영화에서 제작자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해피엔딩으로 마감하듯이, 마지막 에필로그 '어둠강 저편'이 약간 그런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명윤이 마침내 자기 삶을 되찾은 여동생 소식을 알게 된다는 포근한 이야기가 필요했을까? 인영과 의선의 관계가 어렴풋이 되살아나는 설정이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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