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강읽기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사적인 작별

by 로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한 '사적인 작별'에 대한 작별 많이 해 본 사람의 사적인 코멘트



<작별하지 않는다>는 1인칭 다큐 그러니까 일기처럼 시작된다. 그리고 맨 마지막 부분은 마술적 리얼리즘(Magical Realism) 혹은 판타지 풍으로 맺는다.


꿈 이야기인 첫 두 페이지 다음에 바로 한강은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그 꿈을 꾼 것은 2014년 여름, 내가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11쪽)


<소년이 온다>가 2014년 5월에 발표되었으니 이 말은 소설의 "나"는 "한강"임을 노골적으로 선언하는 말이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이 겪는 삶의 고통스러움을 꽤 길게 서술되어 있다. 이것은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려는 사람이 마주해야 할 아픔에 대한 준비운동 정도로 생각했었다.


"처음 그 꿈을 꾸었던 밤과 그 여름 새벽 사이의 사 년 동안 나는 몇 개의 사적인 작별을 했다. 어떤 것은 나의 의지로 택했지만, 어떤 것은 상상조차 못 했으며 모든 걸 걸고라도 멈추고 싶은 것이었다."(12쪽)


여기 언급되는 "멈추고 싶었던 사적인 작별"은 남편이었던 문학평론가 홍용희와의 이혼을 말하는 것임이 뒤로 가면 명확해진다.

그리고 바로 "나"는 자살을 생각하며 유서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내가 죽음을 비껴간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각도의 오차로 지구를 비껴 날아가듯이. 반성도, 주저도 없는 맹렬한 속력으로.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15쪽)


작별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진술'이다. 있는 사실에 대한 주관적인 언표이다.


그러나 두 번째부터는 좀 달라진다.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한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반쯤 넘어진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아, 당신처럼.


살고 싶어서 너를 떠나는 거야.

사는 것같이 살고 싶어서."(17쪽)


이것은 떠난 사람에 대한 원망이며 미움이다. 이보다 더 강렬한 표현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여전히 깊이 잠들지 못한다.

여전히 제대로 먹지 못한다.

여전히 숨을 짧게 쉰다.

나를 떠난 사람들이 못 견뎌했던 방식으로 살고 있다. 아직도."(28쪽)


이 문장에서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된 이유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것은 회한이며 성찰이다.


그리고 세 번째


"여전히 요리를 할 수가 없다. 한 끼 이상의 식사를 할 수도 없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었던 기억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29쪽)


이 말은 너무 가슴 저며오는 그리움이다.


이렇게 자신의 사적인 작별을 자신의 작품에 묻어놓은 것.

이것은 앞서 말한 이유만이 아닌 것 같다.

이는 자신의 '사적인 작별'을 자신의 작품에 영구히 새겨 넣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사족]

한강은 문(Door)에 대한 페티시(fetish)를 가진 것 같다. 자신이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문을 새롭게 칠하는 것이다.


"가족에게 - 특히 딸에게 - 어두운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으므로 집에서 도보 십오 분 거리에 작업실을 얻었다.... 생채기투성이 철문은 흰 수성페인트를 사서 칠하고...."(18쪽)

그리고

"집을 정리한 다음날 흰 페인트 한 통과 큼직한 평붓을 샀다..... 마지막으로 현관 밖으로 나가 철문을 칠하기 시작했다."(『흰』, 1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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