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강읽기

<소년이 온다>, 지금도

- 한강 작가의 마스터피스

by 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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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5.18을 다룬다는 것은 어깨에 납덩이를 짊어지는 일이다.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강이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방법은 독특하다. 사건 그 자체로 플롯을 새롭게 구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건은 그 자체로 말하게 한다. 제주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는 사건에 대해 거의 르포처럼 서술되어 있다. <소년이 온다>는 보다 사건 속으로 깊숙이 천착해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상상력으로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은 아니다. 그럼 무엇으로 소설을 썼는가?


한 마디로 고통이다. 한강은 우리에게 말하려고 한다. 이 아픔과 고통을 우리가 날 것으로 체험하여 내재화하지 못하면 '소년은 우리에게 오고' 피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우리가 고통을 내재화하지 못하고, '북한군' 운운하는 인간들이 여전히 거리에서 날뛰고, 시민에게 "영화처럼" 총을 쏘아댄 군인들을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하고, 발포를 명령한 인간이 편안히 생을 마감하게 만들면 "소년은 온다."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반년 동안 다시 내란을 겪어야 했다.


6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각 장마다 화자가 다르고 서술 방식이 다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는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나' 한강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대로였다. 언뜻 보면 한껏 기교를 부렸다고 말할 수 있다. 5.18을 다루면서 온갖 기법을 다 동원했다면 자칫 비판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만약 그러한 형식에 충분한 내용을 채워 넣지 못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이보다 더 적절한 형식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고 생각될 만큼 내용과 형식이 긴밀하게 얽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한강 읽기' 모임에서 이 책이 6번째 책인데, 역시나 가장 압도적인 마스터피스라는 생각이 든다. 노벨상 위원회가 한강의 작품 중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 주목했을 것이란 판단이 든다.


이 작품을 '빨갱이' 소설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맞는 말이다. '빨갱이' 소설이다. 나는 '빨갱이'라는 말이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고 평등하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가장 애교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강의 소설이 이처럼 직접적으로 역사에 개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노동자의 생존권과 삶에 대해 이처럼 노골적으로 펜은 휘두른 경우는 없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물론 내란으로 인해 빛바래고 수상쩍게 되었지만)와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경제 성장의 마지막 돌파구였던 1980년대를 기억하고 자신의 가슴 깊숙이 고통으로 끌어안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다른 민족에 대한 학살로 전화시키며 괴물이 된 이스라엘처럼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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