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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3. 2020

생각에 대한 생각

1.

생각의 작동 원리는 근본적으로 꿈과 동일하다. 꿈속에서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듯이, 생각에 잠겨있다가 자신을 자각하면 생각에서 벗어난다.


2.

"생각하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은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꿈과는 달리 생각을 하는 순간에는 감각기관으로 폭포처럼 쏟아져들어오는 정보로 인해 '생각'과 '자기인식(생각하는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끊임없이 오고간다. 1초에도 수차례 왔다갔다할 수 있다. 항상 다니던 익숙한 길을 오갈 때는 생각에 잠기기 쉬우나 초행길을 걸을 때는 생각에 잠기기 힘든 것은 감각기관에 들어오는 처리할 정보의 차이에 기인한다.


3.

멍하게(깊게) 생각에 잠기면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무시된다.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은 멍한 상태이다. 꿈과 거의 유사하지만 언어가 다르다. 생각은 언어에 의존하지만, 꿈은 무의식의 메타언어에 의존한다.


4.

멍하게 생각에 잠기는 것은 약 먹은 것처럼 황홀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방해하는 자기인식 때문에 유지하기가 어렵다. 지금부터 이런 생각을 해야지, 하고 결심한다고 그런 생각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생각보다 자기인식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몰입성이 강한 꺼리(예를 들어 로또복권을 한 장 들고 1등 당첨 후에 일어날 일을 상상하는 것)에는 비교적 "의도적인 멍하게 생각하기"가 가능하다.


5.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꺼리'가 많은 사람은 생각을 깊이할 수가 있고, 몰입할 꺼리가 로또복권밖에 없는 사람은 생각에 잠기기가 어렵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는 "의도적인 생각하기"가 강제된다. 생각에의 몰입과 그것을 벗어난 자기인식이 수없이 왕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고 힘들다. 그래서 왠만하면 공부가 싫은 거다. 그러나 이렇게 강제된 의도적인 생각하기로 꺼리를 많이 만들어놓으면 그만큼 생각의 몰입이 가능해진다.


6.

생각에서 벗어났을 때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무엇인가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자신의 실천에 어떤 도움을 주는) 생각에 몰입하는 것은 황홀한 단꿈을 꾸는 것처럼 뽕맞는 느낌일 것이다. 그러니 그만큼 쉬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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