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 영화를 보고
후회막급한 맘을 달랠 방법.
새롭게 하나의 앎을 더했다고 생각해야지.
"볼 필요가 없는 영화"란 '보람찬' 깨달음.
책을 중간쯤 보다 영 아니어서 팽개치고는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는 설움을 위로할 방도.
새롭게 하나의 앎을 건졌다고 생각해야지.
"볼 필요가 없는 책"이란 '뿌듯한' 깨달음.
한 생을 살아보다 영 잡쳤다고 생각되지만
덕지덕지 털어낼 것이 많아 난감한 상황을 극복할 수단.
새롭게 하나의 앎을 득했다고 생각해야지.
"살 필요가 없었던 인생"이란 애잔한 깨달음.
또는
다시 살아도, 백만번을 다시 살아도
이 생을 똑같이 살 것이란 영겁의 깨달음.
자신에게 허락된 인생은 오직 하나뿐.
그러니 애달파도 꿋꿋하게 버티고 긍정하고 초월하는 그 길뿐.
나는 평등의 세상을 안다.
누구든 인생의 1/3쯤은 그 세상에 산다.
다빈치든 아인슈타인이든 히틀러든 전두환이든 공자든 예수든
(어쩌면 해피까지도) 나랑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이빨 빠지는 꿈, 공중을 나는 꿈, 졸라 뛰어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 꿈,
그리고 그 많고 다양한 유치찬란한 꿈을 꾸며
몸을 움찔거리고, 동공을 굴리며, 낑낑 신음을 내면서 잠을 잤으리라.
꿈 속의 세상은 평등하다.
[줄긋기의 유혹]
언제부턴가 그만두었지.
책을 읽다가 공감이 가거나, 핵심을 찌르거나, 꼭 머리에 담고 싶은 문장에 밑줄을 긋는 것.
때론 메모도 끄적거렸지.
다 부질없어졌지.
그 책을 다시 열어볼 가능성이 없다는 자각.
아무리 붙들려해도 머리 속에서 쉬 사라지는 망각.
아무도 이 책을 열어보며 나의 흔적을 살필 사람이 없으니
혹여 누군가 이 책을 읽을 경우 깨끗하게 넘겨주고 싶어졌지.
그래서 오늘도 간혹 찾아오는 줄긋기의 유혹을 떨쳐내곤 했지.
"인간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결핍감에 시달리지만
정작 욕망이 충족되면
권태에 시달리게 된다."
- 쇼펜하우어
"일이 많아 시간에 쫓길 땐
딴 거 하고 싶은 게 마구 떠오르지만
정작 일을 끝내고 나면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다."
- 나
[슬픈 봄]
그래서
이 봄엔 눈길을 돌려버린다.
저들, 재잘재잘 까르륵
꽃의 놀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왠지 바라보면 안 될 것만 같아
고개를 숙인다.
[책만 불쌍해...]
가만히 있으면 멍청해진다.
일부러 사색이니 명상이니를 하려면 더 멍청해진다.
그래서 찜질방에 갈 때면 기어이 책 한권을 들고 들어간다.
침침한 가운데 불빛 밝은쪽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는다.
집중하다보면 땀을 쭉 뺄 수가 있다.
그런데 그러고나면 책이 쭈굴쭈굴해진다.
약한 떡제본 책이면 여지없이 낱장으로 떨어져나온다.
찜질방과 아이스방을 오가면 더욱 심해진다.
벌써 몇 권째인지 모르겠다.
주인을 잘못 만난 책들이다.
실밥 한 올처럼 섬세하고
해면처럼 유연하고
5월의 바람처럼 부드러운 그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다.
단지 그의 존재함이
아픔의 진원지가 되어
스스로 베이컨 처럼 뒤틀릴 뿐.
[공산주의자 선언]
나는 공산주의자였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자기 정체성이었다.
현실이 이상을 배반하면서 그게 거시기하게 좀 구려졌다.
그래서 지금은 잠수타고 있다.
언제고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공산주의자들이 다시 용트림하면 나도 얍삽하게 다시 껴들 마음은 있다.
어찌됐던 우리 역사에서 '공산주의자' 김원봉이 있었다는 사실은 쪼그라든 마음에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다.
- '공산주의자'를 무슨 개쌍욕 정도로만 아는 이 나라 어느 정치인에 대한 개쌍욕을 갈음하며...
[기다림]
이사 후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게된다.
'기다림'이 반복된다.
처음엔 짜증과 초조함이 괴롭힌다.
마음을 바꾸었다.
기다림의 시간을 더 길게 가져보자고.
그랬더니 마음이 나른하고 느긋해진다.
'기다림'에 취한다.
....되더라.
기다림을 즐기는 것이...
[교집합]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아무 관계가 없거나, 혹은 교집합이다.
교집합의 영역이 커지고 그 속에 특별한 몇 가지가 포함되면 '사랑'이 된다.
그런데 그 교집합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합집합인 것으로 우겨대면 사랑은 초라해진다.
한술 더떠서 한쪽이 상대방을 부분집합으로 만들려고 하면 사랑은 완전히 증발하고 소유와 지배만 남는다.
아름다운 사랑은 늘 교집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