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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3. 2020

사랑의 해체

- 추상과 구체성의 변증법

사랑은 뭔가 대단한 것, 위대한 것, 만병통치약 같은 것. 그런 걸까?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바울의 글을 여기까지만 읽으면 마치 사랑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실체'가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는 그 다음 이야기를 위한 서설이다. 그리고 놀라운 반전이 따라온다.


매우 추상적인 개념인 사랑을 완전히 해체해 버린다. 다시 말해 사랑이란 말로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거나, 사랑이란 말로 소유욕을 은폐하거나, 무책임한 의존이나 지배욕을 사랑이란 말로 기만하지 못하게 한다. 사랑이 추상화되면 될수록 이런 은폐와 기만이 손쉬워진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구체성 속으로 해체해 버린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여기에는 별로 숨을 곳이 없다. 은폐도 기만도 어렵다. 괜히 사랑이란 말을 남발할 수도 없다. 구체성 속으로 해체된 사랑은, 사랑이란 말이 품고 있는 그 숭고하고, 아름답고, 애절한 마음을 허덕이게 만든다. 사랑이란 말로 대충 묻어가려는 감정의 찌끄러기들을 싹 쓸어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추상화된 사랑의 개념에 똥칠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언어의 추상화는 구체적 실체의 응집력이 없으면 쉬 수명을 다하게 마련이다.


바울은 사랑의 추상성과 구체성의 변증법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하게 경고한다. 욕망과 소유욕과 지배욕을 사랑이란 말로 호도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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