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로 Oct 03. 2020

잡문9

많은 경험은

그만한 지식과 지혜, 판단력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은 상태'의 경험은 

영원히 상실한다.


때론 경험으로 인해

무엇을 잃었는지

경험으로 나에게 어떤 인이 박혔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사법제도를 귀여워하는 사람]


누가 사법제도를 신뢰할까?


착하게 사는 사람. 흔히 법 없이도 산다는 보통 사람들. 음주운전 사고로 인생 금간 사람. 어쩌다 남의 물건 손 댔다가 CCTV로 딱 걸린 사람. 무지막지 하게 많지만 잘 안걸리기에 계속 go 하는 성폭행범. 상습 절도범. 상습사기꾼. '경영=범법'이란 확고한 철학으로 24시간 범법만을 생각하는 고위경제인들. 걸릴까봐 겁나면서도 힘좀 있을 때 어떻게든 해처먹으려는 정치인들. 법을 실제로 다루는 경찰, 검사, 판사, 변호사.


이들은 어찌 되었든 사법제도를 '신뢰'한다. 여기서 신뢰한다는 말에는 매우 거추장스럽게 여기거나, 빠져나가려고 기를 쓰거나, 당해봐서 무서워하거나, 등등의 경우가 다 포함된다. 결국 사법제도의 힘에 제대로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사법제도를 정말로 우숩게 보는 사람도 있다. 사법제도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 이는 이를테면 이런 인간이다. 자기는 '법 사이로 막가' 능력이 있어서 절대로 안잡힌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 사회의 최고통치자까지 올라가 사법부은 마사지만 잘해주면 된다고 알게되었고, 운 나쁘게 세상이 뒤집혀 자신의 신묘한 삶을 적폐라고 하여 감옥에 처박혀 15년 실형을 받고는 화딱지를 내는 사람. 바로 그다.


아니지. 그도 이제 죄값을 받으면 사법제도를 신뢰(두려워함)하게 되겠지요, 라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범죄사실 10여개 중 7가지만 유죄가 됐다지요? 그것도 좀 어설픈 것들만 걸린 것 같네요. 맘 먹고 제대로 해처먹은 것은 아마 근처에도 가지 못했겠지요. 증거를 확보해 겨우 기소할 수 있었던게 10여개고 실제 해먹은 건수는 '수 천' 건이라면 어떨까요? 아마 지금쯤 그는 "사법제도라는게 참 귀엽네." 하고 있겠지요.


"늑대는 

양이 느끼는 공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 블라디미르 루빈


때론 

누가 늑대이고 

누가 양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분명한 것은,

늑대가 양의 탈을 쓸 때

그 목적은 단 한가지,

양을 잡아먹기 위해서다.


또한 분명한 것은,

양이 늑대의 탈을 쓸 때

그 목적은 단 한가지,

늑대에 잡혀먹히지 않기 위해서다.


- 항구적 불가역적 평화를 열망하며


부동산값 잡겠다고 긴급히 내논 정책, 그 내용이든 성패든 별 관심없다.

이 나라가 '부동산공화국'이 된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터져나올 활화산이다.


부동산공화국(=하는 일 없이 떼돈 벌어 떵떵 거리는 인간군상, 나두 나두 하며 게걸스럽게 넘벼드는 인간들이 주인인 나라)을 혁파하려면 거의 혁명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


보수 언론은 '공산주의'라며 온갖 지랄을 해대고, 태극기부대의 오랜 노하우를 기반으로 수 만 명이 거리로 나와서 청와대로 진출해서 정권을 뒤집어 엎겠다고 난동을 부릴 정도로 근본적인 개혁이 추진되야, 어쩌면 부동산공화국에 아주 쬐금 금이 가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추호도 없는게 그런 정책을 추진할 주체, 즉 청와대, 행정부, 국회, 사법부의 대부분이 상위 5%에 드는 인간들인데 그들이 제 살 깍을 셀프개혁을 한다는 것은 만고의 역사에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그 몫은 늘 그렇듯이 하위 95%의 민주공화국 시민이다.


나의 앎은 세상을 향한 공격이었다.

그렇게 속속들이 들춰내면 세상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부분 역사나 사회과학 책을 팠다.


그렇게 한 젊음이 지나갔다.


지금 나의 앎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이다.

세상이 어찌돌아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종종 괴악한 흐름에 쉽게 떠밀려가지 않는게 목적이다.

그 힘은 문학에서 얻을 수 있다.



"(그녀는) 젊은 시절의 파리함이었던 것이, 원숙기에 이르러서는 투명함이 되었다. 또한 그 반투명성이 천사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순결한 처녀이기보다 하나의 영혼이었다. 그녀는 그림자로 형성된 사람 같았다. 몸뚱이라고 해야 고작 남녀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빛을 함축하고 있을 약간의 질료였고, 그녀의 커다란 두 눈은 항상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하나의 영혼이 지상에 남아있기 위한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였다."


- <레미제라블> 4쪽에 나오는 구절이다.


"영혼이 지상에 남을 구실을 얻기위해 눈을 항상 아래를 향한다..."


위고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끌어들이는 중력이 있다.


글을 통해 160년전 위고의 체취를 느끼게 된다. 또 그가 쓴 내용을 통해 1800년대 초반 역사 현장에서 호흡할 수가 있다.

이제 겨우 50쪽 읽었다. 총 2500쪽은 될텐데... 이번 생에 다 읽을지 걱정된다.

요즘 내가 다시 문학작품에 가슴이 반응하는 것이 놀랍다. <레미제라블>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그저 책꽂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4번째 쪽에 위에 인용한 매력적인 문구를 보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순탄하면 다 읽을 수도 있겠지, 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75세의 여성해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