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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양 Nov 30. 2020

승진이 뭐길래

국세청에서 빨리 승진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쓸쓸한 11월 중순에는 매년 6급 이하 직원에 대한 승진발표가 있다. 올해는 1,461명이 한단계씩 올라갔다. 전국 세무공무원이 약 2만명이니 전체의 7% 남짓이 축배를 든 셈인데, 우리 국 166명 중 6급 4명, 7급 4명, 8급 4명 총 12명이 승진을 했다. 국 단위로 보면 그런대로 평타 수준이지만, 과, 팀단위로 쪼개어 생각해보면 내 승진은 언제쯤 되려나 한숨만 나온다.

피라미드도 모자라 압정형 조직

승진적체는 국세청의 고질적인 문제


국세청에서 9급으로 공직을 시작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2020.8.21. 한국세정신문 기사를 살펴보자. 최근 10년간 조사에서 9급으로 임용된 국세공무원이 5급으로 승진하기까지는 평균 30.14년이 걸렸다고 한다.


9급→8급 : 3.46년

8급→7급 : 6.05년

7급→6급 : 9.18년

6급→5급 : 10.05년


20대 중반에 9급으로 입사하면 50대 중반이 되어야 겨우 사무관이 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근속승진만 연속으로 해서 직급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데, 근속승진연수와 평균승진기간을 비교해보자. 공무원임용령 제35조의4 [근속승진 임용]에 승진소요최저연수가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9급→8급 : 5.6년

8급→7급 : 7년

7급→6급 : 11년


평균승진기간과 1~2년 차이밖에 안난다. 다른 부처에서는 사고를 치거나 문제가 있어야 근속승진을 한다지만, 국세청에서는 다반사다. 심지어 근속승진은 거저 하는게 아니라 승진후보자명부 배수 안에 들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근평을 잘 받아야 근속승진을 할 수가 있다.


국세청 직급 구조


승진에 대한 전략을 세우기에 앞서 국세청 직급 구조를 간단히 소개하겠다.


1. 본청

저 높은 곳에 국세청장님이 계시고 그 아래 국세청 차장님이 계신다. 그 아래 11개 국이 있고 국장님들이 계신다. 국장님들까지 고위공무원이고, 대부분 행시 출신이다. 국장님 아래 과장님(4급, 서기관), 과장님 아래 팀장님(5급, 사무관), 그 아래 6~8급 직원들이 있다.


2. 지방청


내가 소속된 서울지방국세청 조직도를 살펴보자. 서울청장님 아래 국장님들이 계시다. 국장님들까지 고위공무원이고, 한 두분을 제외하고 행시 출신이다. 국장님 아래는 본청과 동일하다.

3. 세무서

세무서는 본지방청보다 직급이 하나씩 낮다. 서장님은 4급 서기관, 과장님은 5급 사무관, 팀장님은 6급 고참, 팀장님 아래 6급 직원을 우리끼리는 차장님이라 부르고(처음에 국세청 차장님도 차장이어서 좀 웃기다고 생각했었다), 그 아래 7~9급 직원들이 있다.


어떻게 하면 빨리 승진할 수 있을까?


1. 높은 직급에서 시작하자


능력이 된다면 5급부터 시작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본청장님도 될 수 있고 지방청장님도 될 수 있다. 그게 어려우면 7급으로 시작하자. 그래야만 국장님 정도까지 노려볼 수 있겠고, 잘해봐야 서장님 한번 해보고 퇴직하게 생겼다. 9급으로 시작해서 서울청장님이 되신 입지전적인 인물도 계셨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잘 해봐야 세무서 과장님 하다가 퇴직이다. 본의아니게 출신에 따라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국세청의 직급은 신라시대의 골품제를 닮았다. 행시는 성골과 진골, 7급은 육두품, 9급은 4두품쯤 되려나.
 

앞서서 출발하는 게 장땡


2. 본지방청 근무를 노리자


올해는 본청에 전입한지 3년 밖에 안된 7급들이 6급으로 승진하는 기염을 토했다. 나는 본청에서 5년만에 승진했는데 3년이라니 자괴감이 든다. 보통 본청에 전입하면 4년만에 승진하는 편이다. 일선 세무서에서는 10년이 넘도록 승진을 기약할 수 없어 근속승진을 하는 실정인데 본청에서는 3년만에 승진하기도 한다. 지방청에서는 전입한지 5~6년만에 7급에서 6급으로 승진하는 편이다.


본지방청에 전입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선호관서에서 근무를 하면 된다. 본지방청에서 승진을 하면 소위 ‘선호관서’를 ‘찍어서’ 세무서로 나온다. 본지방청 출신의 직원과 유대관계를 맺어두면 이들의 추천을 통해 본지방청에 전입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7급 신규직원이라면 신규직원 연수 때 좋은 성적을 거둬서 선호관서에 입성하여 본지방청 출신과 친해지자.


9급으로 입사했다면 열심히 해서 8급으로 승진한 다음, 열심히 하는 모습을 관리자에게 어필하고, 인사 시즌에 본지방청에 추천해달라고 미리미리 부탁하자. 아주 이상한 관리자가 아니라면, 열심히 하는 직원은 어떻게든 인맥을 활용해서 본지방청에 보내려고 애쓴다. 그렇게 초반에 본지방청에 발을 딛으면 최소 동기들 중에서 승진 레이스의 선두에 설 수 있겠다.


그런데 승진만 하면 다일까?


나는 7급으로 입사해서 3년만에 본청에 전입했다. 본청에 전입하면 승진이 빨리 될 줄 알았다. 중간에 조사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놈의 승진에 눈이 멀어 본청 비선호부서에 눌러앉아 있다가 겨우 5년만에 승진을 하고 탈출을 했다. 세무서에 비하면 굉장히 빨리 승진한 편이지만, 본청에서 5년이면 정말 안풀린 케이스였다.


본청에서 5년동안 진이 빠지고 나니 한동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나는 뭘 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승진 레이스를 뛰었던 걸까.

그렇게 뛰어서 뭐가 남았나

시간이 흐르고 정신을 차린 다음 지방청 조사국에 전입했다. 조사국 5년차인데, 내 앞으로 승진을 기다리는 사람이 네명이나 있다. 나는 언제쯤 5급으로 승진할 수 있을까. 까마득하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승진하겠지만, 그러고 나서는? 이라는 질문엔 선뜻 답을 할 수가 없다. 서기관 승진은 어떻게 할 것이며,  서기관 승진을 하고 나서는 부이사관 승진은 할 수 있을까? 본청에 뛰어들어 아등바등 애를 써봐야 잘해야 부이사관이고, 세무서장이나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싶다. 그렇다. 스물아홉에 7급으로 공직을 시작해서 용을 써봐야 4급이 한계인 것이다. 국세청 조직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런데 승진에 대한 고민은 비록 아랫것들만의 고민은 아니다. 행시 출신 서기관님도 부이사관 승진을 걱정하고, 세무대학 출신 서기관님도 퇴직을 앞두고 남은 커리어를 어떻게 챙겨야 할지 고민이다. 윗분들은 윗분들대로, 아랫것들은 아랫것들대로 고민이 많다. 모두가 고민인 가운데, 공순이를 꿈꾸는 그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애벌레들을 짓밟고 올라가면 저 위에는 뭐가 있을까


새내기들을 위한 조언 한마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땐 합격만 하면 만사가 오케이일 것 같은 그대. 막상 세무공무원으로 일하기 시작하면 승진 때문에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일은 빡세고, 승진은 더디고, 월급은 작고 귀엽다. 십 수년 전에 세무서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 나보다 1년 선배인 언니가 나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를 해주었다.

승진인지, 웰빙인지 선택해


지금 생각해보면 06년 입사자나 07년 입사자나 거기서 거기인데, 그 언니가 해준 말이 진리였다. 웰빙하면서 승진을 할 수 없고, 승진을 하자면 웰빙을 포기해야 했다. 승진을 하고자 하면 어떻게든 본지방청으로 전입해서 일찍부터 승진레이스를 뛰어야 할 것이며, 승진을 포기하면 적당히 일하면서 내실을 기할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세무사 자격증이 있다면 적절히 경력을 쌓아 세무사를 하는 것도 좋겠다. 사실 아등바등 승진해서 세무서장이 되어 퇴직한다 한들 세무사밖에 더되겠는가. 종착점이 세무사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자리를 잡는 편이 낫겠다.


P.S.꽃들에게 희망을

옛날에 읽었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그림책을 아시는지?

호랑애벌레가 애벌레산에서 다른 애벌레들을 짓밟고 위로 위로 올라갔는데 꼭대기에 아무 것도 없더랬다. 승진 레이스를 뛰는 우리 처지가 호랑애벌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애벌레를 짓밟고 올라가는 것 말고도 내가 나비가 되는 길이 있지 않을까.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사무실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

승진에 좌절한 동료들에게,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고민이 많은 후배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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