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에 상상했던 30대는 드라마에서본 멋진 커리어우먼의 모습이었다. 멋지게 PT를 하고 미팅에서 자신의 의견을 멋지게 피력하고 야근도 멋지게 하며 야근한 다음 날도 멋지게 풀셋팅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걸으며 커피를 들고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이랄까.
드라마는, 드라마였다. 그러한 모습은 나에게 1도 없다. 내 주변에도 야근한 다음 날 당당하고 쿨한 모습으로 출근하는 또래 젊은이를 본 적이 없다. 아쉽게도...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고 통장 잔고에 불안해하고 업무량에 압도당한다.
10대엔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나만 그럴듯한 대학을 못 가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불안했다.
20대 내내 남들과 엇비슷한 수준의 회사에 가야 한다는 불안에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
30대는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가에 대해 그리고 남들이 다하는 결혼을 나도 언젠가는 해야 할 텐데 하는 구구절절한 고민들에 여전히 불안하다.
40대라고, 50대라고 걱정이 없을 리는 만무하다. 고민이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리는 없다. 어른이 된다는 건 멋지게 쿨해지는 게 아니라, 갈망하던 것들을 하나씩 단념하며 마음이 식는다는 의미로 '쿨'해지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둘도 없는 친구를 작년에 한 번 만나고 올해 처음 만났다. 내 친구는 자다가 세네 번을 깨고 정신과를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심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부서가 바뀌어 새로운 업무를 배워야 하는 데다 던져진 업무량은 산더미고 마음속으로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다'는 무기력함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퇴사를 하게 된다면 그 이후 삶에 대해 자신이 없고 대안이 없기에 현상유지를 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친구가 너무 안쓰러웠다. 나도 불안과 걱정을 달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친구를 보니 나는 약과였다.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끌려가듯 일요일 오후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일을 할 때도 마음이 잡히지 않아 본인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우리가 꿈꾸던 '가슴 뛰는 삶'은 이런 두근거림이 아니었는데.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잘못 이해하신 걸까.
친구와 나눈 대화의 결론은 '다스려야 할 것은 상황과 문제라기보다 나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입바른 소리를 하고 상황을 비판하고 불만을 토로해봤자, 과거에 패기 넘치게 몇 번 해보았지만, 손톱만큼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소리를 하는 나를 한심한 사람으로 볼뿐, '당신 참 멋지군요. 우리 함께 이 우라질 상황을 바꾸어 보아요!'라고 말하는 동료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람에게는 말수를 점점 더 줄이게 된다. '진심'을 말하는 것은 시한폭탄을 손수 안겨주는 일과 같다. 나의 '진심'이 언제 비수가 되어 내 심장에 박히게 될지 모른다. 혹은 뒤통수에. 친구 외에 사회적 관계 선상에 있는 사람에게 진심 어린 고민을 얘기하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한다는 것은 내 경험으로 비췄을 때 위험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 결국에는 알맹이 없는 이야기들,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때워야 한다. 일에 매진하다가 돌아온 나의 일상은 공허하다. 의미를 찾지 못한다. 업무 외에 새로운 발상을 하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어마어마한 동기부여가 없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진심을 털어놓지 못하고 항상 웃는 얼굴 가면을 쓴 채 씁쓸한 마음으로 이어가야 하는 사회생활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그만두고 당장 이민을 떠날 수도 없기에 끝장을 보자는 식으로 치달을 수는 없다. 사회생활에 관한 고민, 과도한 업무량에 치이는 일상, 기타 등등의 개인적인 고민들은 아마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시지프스 신화와 같은 이 굴레를 내가 뜯어고칠 수는 없다. 나는 신이 아닌 인간에 불과하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그 일의 중심은 마음을 지키는 일에 있다. 잘 해내지 못한 일에 대해서 나 자신을 미워하고 자책만 할 게 아니라 어쩌면, 오히려 좀 뻔뻔해져야 한다. 일이 너무 많고 시간은 부족한데,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한 건데, 이거밖에 안되냐고 하면, '뭐 어쩌라고? 니가 하면 더 잘할 거 같아?' 이렇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최선을 다한 후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생각이어야 한다. 모든 것이 내가 잘못해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모든 일은 복합적이다. 상당히 많은 일들은 어긋난 타이밍과 불운과 연관된다. 이렇게 생각해야 본인 정신건강에 좋다. 잘 된 일은 내가 잘해서고 잘 안된 일은 타이밍이 어긋났고 운이 나빴다고 말이다.
무책임해지자는 말이 아니다. 스스로 옥죄는 것을 가끔은 놓아주자는 거다. 유명한 사자성어 '복세편살'이 있지 않은가.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모든 것이 당신 잘못은 아니다. 하필 타이밍이 그랬던 거고 그날따라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런 거다. 그러니 너무 스스로에게 바가지 긁지 말자. 당신은 최선을 다했고 잘하고 있다. 당신 스스로 당당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면 그만이다. 스스로를 탓하지도 누군가를 원망할 것도 없다. 그 일은 그저 지나가도록 놓아주자. Just Let It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