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꿈에 자꾸 이전 직장 팀장이 나온다. 그 사람의 표정은 어떻게 보면 나를 반가워하는 거 같다가도, 내가 예전보다 잘 된 건 아닌지 불안해하는 얼굴 같기도 했다. 겉으로는 잘 되길 바란다고 하면서 속으론 '넌 절대 잘 되면 안 돼'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달 추석 연휴에 팀장으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다.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 문자였다. 정말 반갑지 않았다. 정작 회사에 다닐 당시에는 어렵사리 회의 자리에서 낸 의견에 대해 대놓고 무시했고 연차를 낼 때마다 사유를 묻고 누구와 어딜 가는지 물었다. 다녀와서도 물었다. 묻지 않았으면 하는 질문만 골라서 했다. 그러면서본인이 일주일 동안 해외여행을 가면서도 팀원들에게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연차를 던지고 떠났다. 나는 그런 상사를 타산지석 삼을 뿐 그 사람에게 인간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전혀 배운 것이 없었다. 배워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으로부터 안부 문자가 왔다. 회사를 그만둔 지 1년 정도 된 시점이었다. 그 사람을 싫어하더라도 앞으로의 인연은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공존했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가식 어린 말투로 답장을 보냈다. 그 팀장은 종종 연락을 주고받자는 말로 메시지의 마지막에 운을 띄웠지만 나는 그 말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행복하게 지내라고 했다. 행복하고 건강한 것이 우리네 인생의 진리이고 가장 우선 아니겠는가. 온 우주의 선함을 끌어모아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라며 답장을 마무리했다. 그러고는 카톡방에서 나갔다. 그 채팅창이 내 눈과 마주칠 때마다 꺼림칙했다.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는 사실과 나의 가식적인 답장 두 가지 모두 꼴 보기 싫었다.
있을 때 잘하란 말이야. 퇴사하고 1년 뒤에 잘 지내냐는 카톡 같은 거 보내지 말고. 제발. 그때 잘해줬어야지. 그때 독한 말 한마디라도 덜했어야지. 그래, 당신을 제발 살면서 이제 마주칠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러기엔'혹시 모르니'라는 말이 꽤 자주 현실화된다는 걸 알아 버렸네.
그래서 나는 끝까지 가면을 벗지 못했지만, 솔직한 심정은 이렇다. 더 이상 얼굴 보지 말자. 꿈속에서도 보지 말자. 나오지 마라.
나는 누군가에게 이 정도로 간절하게 꼴 보기 싫은 인물은 되지 말아야지 하고 오늘도 타산지석 삼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