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가까이에 사는 사촌동생과 오랜만에 만났다. 사촌동생이라고는 하지만 만 1년 차이도 나지 않는다. 약 11개월 차이지만 고마운 동생은 나에게 꼭 언니라는 호칭을 붙여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코로나가 오기 전 돌아다니기 좋아했던 우리 각자가 다녀왔던 여행을 추억해보기도 했다. 사촌도 대학생 때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었고 회사원이 되어서도 매년 해외여행을 다녀서 꽤나 여행 경험치가 높다. 나도 대학생 때 방학마다 국내든, 교회 선교든, 해외든 어디든 나갔다. 지금 돌아봐도 그건 참 잘한 일이었다. 이렇게 전염병 때문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때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더 다행스럽다. 그래서 지금 대학생들이 참 짠하다. 그 나이 때만 해볼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은데, 아무것도 하질 못하니 말이다.
2013년 프랑스 파리에서. 어쩜 좋아. 진짜 어렸었네.
대학생 때는 내가 겁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엄마아빠는 항상 내가 해외에 나가 있으면 걱정하시고 불안해하셨다. 하도 겁대가리(?) 없이 돌아다닌다고 말이다. 나도 20대 10년 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겪어 보니 왜 어른들이 그렇게 걱정하시는지 알 것 같다. 20대 초반에 비해 지금은 겁이 많아졌다. 아주 겁쟁이가 돼버렸다! 세상에나... 겁쟁이는 어른의 동의어 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몸소 체험하든 간접 체험하든, 경험을 해봤기에 다시 20대 초반처럼 겁 없이 돌아다니지는 못할 것 같다. 대학생 때는 여행을 가면 호스텔에서도 가장 저렴한 10인 혹은 8인 1실을 쓰곤 했다. 여자 전용실이 대부분이었지만, 도착해보니 '니들이 늦게 와서 방이 없다'며 혼성 방을 내주는 호스텔도 있었다. 방 안에 있는 화장실, 샤워실도 돌아가며 써야 하니 어찌나 서양 남자애들이 웃통을 훌러덩 벗고 다니던지 그때는 그런 게 무서웠다. 흠. 왜 그랬지...?
암튼 지금은 그런 숙소를 고르지도 않을뿐더러 외부인과 섞일 일 없는 개인화된 이동경로로 여행 루트를 짜게 된다. 나이 좀 먹었다는 게 티 난다.
파리 에펠탑만 보면 감동에 젖었던 시절.
알고 보니 치안이 위험하기로 유명한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도 혼자 갔었다. 에어비앤비를 예약했고 혼자 미니 트레인 투어를 다녀오고푸르름의 절정이었던 바다를 보며 걸었다(그 와중에 지중해는 끝내줬음). 게다가 주변에 지나가는 아저씨 아무나 붙잡고 '저 사진 하나 찍어주세요'하며 돌아다녔다. 돌아보니 오히려 그 아저씨가 날 무서워하지는 않으셨을까 싶다. 그러다 갑자기 해가 지고 숙소에 가려는데 길은 잃었고, 중동에서 온 것처럼 생긴 남자들이 '니하오~'하며 나를 보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대는 게 공포스러웠다. 그러고 니스까지 다녀왔다는 이야기.
지금 같으면 엄두도 안 날 것이다. 일단 파리 리옹역에서 새벽 6시 기차를 타야 갈 수 있었는데 5시에 밖에 나오니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기차역에서 노숙하는 흑인들이 나를 가만히 응시하던 눈빛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한 손에는 후추 스프레이를 꽉 쥐고 간신히 지하철을 타고 리옹역까지 가서 남부로 가는 테제베에 탑승했다. 무사히 여행 일정이 끝나고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프랑스 남자애가 옆에 타고 있었는데 출발한 지 3시간 만엔가 말을 터서 남은 3시간 동안은 간식 나눠 먹으며 온갖 집안 얘기와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수다를 떨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랑 그렇게 오래 얘기한 것도 처음이었다. 언제부터 내가 그렇게 넉살이 좋았는지. 잊을 수 없는 2013년의 여름이다.
2013년 파리 에펠탑
여름이고 휴가 시즌이 되니 자연스레 잘 돌아다니던 대학생 시절 생각이 났다. 우연히 구글 포토를 보다 보니 친구들과 파리 교환학생 갔을 때, 계곡에서 놀던 때, 봉사활동 갔을 때, 제주도 여행 갔을 때, 미국 연수 갔을 때 등등 정말 곳곳을 돌아다녔고 어디 갈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추억들을 만들었던 때였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대학 생활을 후회 없이 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그 덕에 즐거운 추억들이 많다는 건 확실히 얘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좋은 추억들은 내가 천국에 올라가는 날 까지도 가지고 가고 싶을 정도다. 이런 추억들은 내가 꽤 괜찮은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증거가 되어 준다. 지금은 내 진로와 생활이 불안정하기에 인간관계를 잠시 멈춤한 상태지만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들을, 그동안 연락이 너무 뜸해졌던 친구들을 불러서 만날 날이 곧 오리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보니 참 그리우면서도 그때의 즐거움과 행복이 여전히 느껴져서 좋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추억의 힘은 세다. 지금의 나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는 행복한 기억들. 지금 조금 힘들더라도 지난날 웃고 즐거웠던 추억들로 힘을 내시길. 다시 그런 날이 오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