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를 살게 하는 것

우연한 데서 받는 위로

by 다올

거창한 제목이다. 마치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어깨가 무거운 가장이 쓸 법한 제목인 것 같다.

나는 가장은 아니지만 어깨가 가볍진 않다. 지금 상황이 어느 창고에 박혀 있는 쓰지 않는 물건 마냥 처박혀 있는 것 같더라도, 자기 객관화로 바라보니 참 후지다고 생각할지라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끌고 나가야 하니 말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이두형 정신과 의사의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라는 책이 있다.

제목 자체가 내가 혼잣말로 되뇌고 있는 말 같아서 골랐다. 나는 '괜찮아' 지고 싶었다.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만 할 뿐 마음은 따라주지 않았다.


이 책은 단순히 '당신은 지금 충분히 괜찮습니다. 불안해마세요.'라고 위로하는 내용만은 아니다. 물론, 불필요한 불안을 느낄 필요 없다는 내용이 주된 메시지이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고 불안해하고 있는지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괜찮다가도 문득 '내 인생은 정말 가치가 없구나. 쓸모없는 인생이다. 내가 숨 쉬는 것 자체가 마이너스다. 내가 혼자 있다가 잘못되어 죽는다고 해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라고 혼자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정신 차려 보면 인생은 단순히 한 번에 끊어버릴 만한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결혼도 안 했고 자식도 없지만 부모님이 계시고 오빠가 있다. 그리고 가끔 연락을 주는 친구들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의미 없는 일상을 이어가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실패는 실패 그 하나만을 증명할 뿐 나를 규정하지는 못한다. 생각은 스스로를 규정한다. 실패했지만 '아직 해내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다가올 기쁨을 기다리는 것이 된다.

실패는 실패 그 하나만을 증명할 뿐이다. 별 것 아닌 말 같은데 이게 참 사람을 위로한다. 나는 그동안의 숱하게 이어진 실패의 조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기에 나 자신을 미워하고 괴롭혀 왔다. 하지만 실패는 실패이고, 나는 나다. 실패가 곧 나는 아니다. 이전까지 계속 실패해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실패하라는 법은 없다.


오늘이 이렇게 힘든데 그것이 내게 의미가 있는지, 정말로 내가 원하는 일인지, 내 삶의 가치와 닿아 있는 일인지 모호할 때, 마치 다시 굴러 떨어질 바위를 들어 올리는 심정으로 살아갈 때, 그 무의미함이야말로 견디기 힘들다.

내가 회사 다닐 때 이런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다. '무의미'했다. 열심히 해도 보상은 없었고, 열심히 해도 화살이 내게 돌아올 때도 있었다. 일에서 느끼는 보람은 정말 2%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다 의미가 없었다. 사람도 싫었고 그 직장에서 그 일을 평생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공포스러웠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죽을 때까지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가치란 그런 것이다. 나만이 알 수 있는 것, 삶의 고된 이유를 알려주고 그럼에도 삶이 헛되지 않음을 깨닫게 하는 그런 것이다.

나는 그동안 항상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겉으론 안 그런 척해도 남의 인정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항상 흔들려왔다. 나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고, 그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싶다. 이미 내 안에 있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오늘 내 삶에 깃든 행복을 멀리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삶은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이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연속이 되었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마음으로 굳이 옥죄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도 노력할 것이다.

내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관통한 문장이 바로 이 문장이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오늘 내 삶에 깃든 행복을 멀리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나는 무언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면 난 그 어떤 행복도, 즐거움도 느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는 나도 모르게 '행복에 필요한 자격'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 책에서도 나오는 부분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 그렇게 되었다기 보단 학창 시절에 선생님들이 흔히 말하는 '그 점수에 잠이 오냐', '그 점수 맞고 밥이 넘어가냐' 등 농담 반 진담 반 하는 흔한 말들이지만 이런 말들과 시선이 쌓여서 '성과가 없으면 나는 그 어떤 즐거움을 느낄 자격도 없다'는 고정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어머니는 결과에 그렇게 연연하시는 분은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결과에 대해서는 무척 냉정하시고 엄한 분이셨다. 그래서 더더욱 실망감 드는 일이 있을 때면 아버지한테 말씀드리기가 너무 어려웠다. 지금도 그렇다. 아버지는 나와 다르게 시험에 있어서는 '불합격'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으신 분이다. 나와 천성적으로 성향이 매우 다른 아버지라서 아버지의 입장에서 나를 이해하기 어렵고 내 입장에서 아버지의 그런 성향을 보면 남 얘기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누군가 옆에서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자책감에 짓눌려 우울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짧은 서른 인생을 살아보니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다. 내가 합격하는 시험도 있고 떨어지는 시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너무 심하게 동요하다 보면 나 자신에게 너무 함부로 대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 과정에 있어서 노력하지 않았다면 반성할 필요가 있겠지만 열심히 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그 이후의 인생에 있어서 나 자신이 무가치하고 행복할 자격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스스로를 구속하고 살든, 괜찮다고 토닥이며 과정을 즐기면서 살든 결국 인생은 계속해서 가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나 스스로만큼 나를 위로해줄 수는 없다. 나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말자. 주변에 스쳐 지나가는 즐거움과 기쁨도 마음껏 느껴도 된다. 해낸 것 없다고 기죽을 필요 없다. 앞으로는 잘 될 거니까. 지금은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찾는 과정일 뿐이니까 말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든 안 뜨든 별 차이 없이 정말 무의미한 인생이니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도 자주 있었지만 나를 위해 준비해둔 듯한 글이 빼곡한 책과 요즘 꽂혀버린 Summer Life 처럼 신나는 음악은 그래도 조금은 나를 북돋아주고 살아갈만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포기하고 말고는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다. 멋진 서른은 글렀으니 멋진 마흔을 꿈꿔 보련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