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소망

바뀐 앞 자릿수의 압력

by 다올

그다음 해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스물여덟 때부터였다.

그다음 해가 스물아홉이고, 또 그다음 해는 서른이기 때문이다.

눈을 질끈 감고 나이를 거부하고 싶었지만 떡국을 안 먹는다고 나이도 안 먹을 리는 없었다. 떡국을 안 먹어봤자 맛있는 떡국을 못 먹는 건 내 손해였다. 그렇게 1991년생인 나는 올해 서른을 맞이하였다.


나는 별로 변한 것도 없이 그대로인 것 같은데 웬 나이는 이토록 먹어 버린 건지. 나는 쌓아 올린 공적도, 그렇다 할 커리어도 없이 이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이 생각은 지금껏 나를 짓누른다. '나... 진짜 뭐 한 거니?'

나름대로 청춘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해외도 드나들며 방학마다 짧든 길든 여행을 가며 내가 진짜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기 위해 낯선 환경에 나를 많이 내던지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 방황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나 자신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긴장감과 설렘을 동시에 가지고 새로운 환경에 갔을 때 흥미로운 것도 있었고 생각지 못한 마음의 생채기를 얻기도 했다.


서른의 나이에 방황을 하고 있자니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러웠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괜찮은 회사에 계속 다니며 안정적인 삶을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 시간 동안 뭘 하고 있었던가. 나는 이게 아닌 거라고 생각하면 과감히 집어던졌다. 뒤돌아 나왔다. 남아 있는 사람이기보다는 떠나는 사람이었다. 그건 과감한 것일 수도 있고 겁이 많아서 일 수도 있다. 무서우니까 더 가기 싫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정확히 모르겠다. 근데 이건 아니라고, 그냥 화가 나서 집어던진 게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도 참아보며 고민했는데 도저히 대안이 나오지 않으니 그만둬버린 것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가장 실망을 많이 한 것은 내가 기대한 '어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정말 손에 꼽는 한 두 명 정도는 있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그 인연이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내가 오래 있을 수 있던 조직에서는 정말 업무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존경심 정도까진 바라지도 않았지만, 절망스럽게도 배울 점 있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들이 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미래의 거울이라면, 나는 그 조직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 사람들처럼 맨날 현실을 탓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오게 됐다.


사실 직장생활을 안 해본 상태라면 현실을 모르니까 무조건 어디든 가서 일을 하고 싶을 텐데 이미 다니던 곳마다 실망을 많이 했고 일을 시작하면 어떤 고생을 할지 대략 알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무엇이든 하자라는 생각이 안 든다.


서른 살, 나의 방황이 너무 길어지지 않으면 좋겠다. 물론 연봉이 높고 타이틀 있는 회사라면 좋겠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소망하는 것은 멘토로 삼을 수 있는 선배, 상사를 만나는 것과 정상적인 사회인의 마인드를 갖춘 동료를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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