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31일. 서른둘의 나는 나름의 대단한 결심을 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4월에 공부를 시작하여 10월 29일 시험일까지 약 7개월의 고군분투 끝에 초시, 동차 합격으로 자격증을 취득했다.
나도 시작하기 전에 그랬고, 남들도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그거 운전면허 정도로 흔하고 개나 소나 따는 쉬운 자격증 아니냐?'
길거리에 부동산 중개사무소가 천지에 있어 나도 참으로 쉬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교재를 받고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와, 아줌마 아저씨들 이거 어떻게 공부했대? 이거 겁나 어렵잖아!" 외마디를 외쳤다.
아줌마, 아저씨들 대단하신 거다. 존경한다, 진심으로.
모든 업은 그렇게 쉽게 시작할 수 없다. 특히나 부동산 중개는 자격증은 정말 시작일 뿐이고 경력이 숱하게 쌓여야 그나마 이제 일 좀 할만하다고 할 수 있는 업계다.
나는 그토록 간절히 가고 싶던 기업들을 수없이 떨어져 봤고, 수없는 좌절은 해봤지만 이렇다 할 내보일 성취는 별로 없었다. 서른둘에 이뤄낸 공인중개사 취득의 성취는 생각보다 내게 큰 힘을 주었다.
이전까지 영어강사로 일했다. 강사로 일하며 자존감이 낮았다. 남들은 번듯한 대기업, 공기업에 다니거나 안정적인 공무원인데 난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항상 남들의 삶에 내 삶을 갖다 대며 키재기 비교를 했다. 아무 의미 없는 일인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그랬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많이 사라졌다. 왜 이런 변화가 있을까 생각해 봤더니 특별히 다른 이유는 없고 성취감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나도 할 줄 아는 게 있고, 언제든지 선택적으로 부동산 중개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나는 아이들을 무척 예뻐하고 좋아하여 영어강사 생활을 오래 했다. 영어강사라는 직업도 많은 인내와 티칭 능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제 영어강사 그리고 공인중개사라는 두 가지 직업을 모두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며 인생에 절대적인 기준도 잣대도 없다는 것을, 의미 없다는 것을 느낀 것과 합쳐져 이제는 내가 떳떳하게 일하여 돈을 버는 직업이라면 무슨 일을 해도 당당할 수 있다. 남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낄 필요도, 숨어들 필요도 없다. 내가 좋아하며 사회적 수요가 있는 일을 보수를 받으며 하는 것이고 나만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에게는 사회복지재단 설립의 꿈이 있다. 불의의 사고로 학교가 아닌 사회로 나가야만 했던 어린 청소년 또는 가정폭력이나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 자기가 부모를 택하지 않았건만 오직 운명으로 인해 불행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다.
2016년에 갑작스레 전방 십자인대가 완전히 파열되어 재건 수술을 받고 6개월 동안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었다. 그때는 하나님을 참 많이 원망했다. 우울감이 심했고 죽고 싶은 날이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나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불운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짠해진다고 밖에 표현 못하겠는데, 조금이라도 그들을 돕고 싶다. 당신 때문에 그런 거 아니라고, 조금만 더 가보자고 말하고 싶다. 내가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이 가족들의 사랑 덕이고, 종교가 기독교인지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주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쌓여 내 삶이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나는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
지금은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도 아니고, 급여도 높지 않지만 현실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꿈을 품고 나아간다. 요즘 유튜브에 유행하는 '부자 되는 긍정 확언'처럼 나도 스스로 외친다. "난 사회복지재단을 세웠다!" 이제 내 뇌는 이미 내가 그러한 사람이라고 인식했을 것이다. 이 외침을 현실화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할 것이고 함께 이 꿈을 이뤄 갈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 머지않아 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내게 당당함을 선물했다. 그것이 내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