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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사랑도어차피실체가없다.

by eyanst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일은 크리스트교에서는 아주 위대한 일이라고 한다.

그 신은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나도 한때 멀리 떨어진 외국에 사는 한번도 보지 못한 교포 여친이 있었다.

여친이라고 하기엔 실제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인정하기도 뭐하고 아니라고 하기도 뭐했지만 우리는 필경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졌던 것 만큼은 분명했다.

그러나 실체가 없음은 믿음을 갖기에 아니 오래 지속시키기엔 참으로 힘든 일인것 만큼은 분명했다.

나는 사랑의 감정은 결국 믿음이고 '사랑해서 믿는게 아니라 믿으니까 사랑하는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이것은 예전 '리아'라는 가수가 부른 '난 그래' 라는 곡 가사에서도 나오던데.

'오래된 연인의 사랑은 믿음으로 변한다고들 해'


물론 교포 여친은 외국에 살고 있을뿐 당연히 실체가 있다.

하지만 그 실체가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진화하지 않음은 무엇이 다른가?

서로 더 알고 싶고 알아야 할 것들을 모두 어쩔 수 없이 스킵해 버리곤 했다.

결국 그 당시의 HER는 나에게 집착을 보였고 내가 반응이 늦으면 짜증을 내기도 했다.

믿음의 문제.

서로 10시간 떨어진 곳에서도 나에게 그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는 것이 상당히 놀라웠던 기억도 있다.


나는 이 영화를 개봉 당시에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그 당시의 여친과 보았었다.

제일 위에 언급한 교포 여친은 이 이후의 사람이다.

어쩌면 그냥 시간 때우기로 별 기대 없이 영화를 보러 간 것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컴퓨터와 사랑에 빠진다고?


이게 무슨 하나마나 한 얘기일까 하고 기대 없이 본 영화 였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는 옆에 여친이 같이 걷고 있음에도 이 영화의 감정의 여운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었었다. 아름다운 음악 , 그리고 씨어도어(당시 개봉버전 자막엔 분명 씨어도어였다)의 셔츠 빛깔이 계속 맴돌았다. 씨어도어의 이혼 할(한) 아내와 행복했던 시절을 상상 할 때 나오던 컷들은 영화 'once'의 주인공이 보던 노트북 속 여친 회상 장면과 비슷해서 잠시 그 영화를 소환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던가 다다음 날이던가 ..

지금의 서리풀 공원 입구 근처 저녁에 돗자리를 피고 앉거나 누워 이 영화의 OST를 들었었다.

옆에 여친도 이 음악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영화가 끝나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었다.

그리고 우린 몇개월 후 다음 해 늦겨울, 초봄 어떤 현실적인 이유로 이별을 해야 했다.

서두에 쓴 교포 여친을 문자로만 만났던 것은 그렇게 아프게 한 해를 넘긴 다음 해에 시작 된 것이 었다.


며칠 전 아트나인에서 재상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가서 영화를 다시 보았다.

정작 자기들(앳 나인 직원들)이 보고 싶어서 다시 상영한다는 말과 곳곳에 직원들이 앉아 있다는 말이 이 영화가 힐링 되는 영화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10여년전 아주 오래전 여친은 직업이 미술치료사 였는지라 언젠가 블로그에 '마음에 치유가 되는 영화' 란 글을 올려서 여러 편의 영화를 소개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리스트에 '라디오스타' 가 있었는데 그게 왜 치유가 되지? 란 생각을 했으나 나중에 내가 힘이 들때 정말 그 영화를 그냥 앉아서 보지 않고 그저 오며가며 지나칠때 눈 길 한번 주는 셈으로 DVD 무한 반복으로 켜놓은 적이 있었다.

이 'HER' 영화 역시 사람들에게 힐링이 되는 영화가 아닐까? 다들 상처 있잖아..안 그런척 해도.



다시보니 예전에 놓쳤던 컷들 음악들이 다시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테오도르로 나오는 자막을 보면서 '아 왜 변했지? 씨어도어가 원래 발음에 더 가까운데 TH를 굳이 ㅌ로 번역한 번역가가 보수적이군' 했다.

그리고 가장 놀랐던건 극 중 '에이미 아담스'가 씨어도어의 여사친이라는 것을 왜 그땐 몰랐지 였다.

하긴 난 그녀를 'ARRIVAL' 과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비로소 인지 한 배우기는 했다만...


몸이 없는 싸만thㅏ는 씨어도어에게 '우리는 함께 찍은 사진이 없으니 곡을 만들었다. 이 곡을 우리의 사진으로 정하자' 고 말한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OST를 작업한 ARCADE FIRE라는 캐나다 밴드의 'PHOTOGRAPH'

해변에서 자신의 팔을 연인의 무릎처럼 베고 잠든 씨어도어의 모습에서 나오던 'SONG ON THE BEACH'

싸만thㅏ가 박사와 얘기한다고 씨어도어에게 양해를 구하고 눈길을 헤매다 '우린 결국 다 떠나요' 라는 대사에 흐르던 'WE'RE ALL LEAVING' '

이혼 서류를 앞에 두고 아내와 만나 갈등을 빚을때 나오던 'DEVORCE PAPERS'

이 음악들은 마치 '드뷔시' 의 'IMAGES'란 곡들과 많이 닮았고.

시간이 된다면 유투브에서 '조성진 드뷔시 IMAGES' 쳐서 나오는 그 곡을 19분 부터 들어보기 바란다.

참고로 드뷔시는 당시의 인상주의 화가들 르누아르의 그림과 화풍에서 영향을 받았다.

곡 제목도 이미지..즉 영상.그림 뭐 그런뜻이니 싸만thㅏ가'사진'이라는 곡 제목을 정한 그들의 함께하는 사진과 아주 닮았다. 드뷔시를 아케이드 파이어와 비견하다니 .. 그런걸 어떻게 하겠나.


사랑은 받지 않을 생각으로 빌려주는 돈 처럼 그냥 줘야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서운하고 밉고 바라고 .. 그런것들이 인간이라기에 넘어가지만.

부모가 자식을 향하는 그런 마음 말고는 그런 사랑이 있을까? (모든 부모에 해당 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실체 없는 것들에 희망을 갖고 산다.

꿈, 소망, 사랑 , 믿음 ...

무슨 소리야? 남녀간의 사랑도 얼마나 숭고한데 ..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사랑은 그저 덧없음이지..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고 믿을 열정이 지금은 존재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든게다.

아니 어쩌면 HER 를 보는 중 잠시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던 대사.


“나는 이미 세상의 감정을 다 느껴 본 것 같아.그래서 다 시큰둥 한 것 같아”

“Sometimes I think I have felt everything I’ve ever gonna feel. And from here on out. I am not gonna feel anything new.”


그래..


다들 HER의 포스터 정면 사진을 쓰길래 나는 저 사진을 골랐다.

저 장면이 가장 행복했던 장면 중 하나였기에.

그러나 내 집의 컴퓨터 바탕화면은 OS1이 켜진 컴퓨터앞에 망연 자실 앉아 있는 씨어도어다.


업데이트 된 후 재부팅을 거친 싸만thㅏ는 8000여명의 사람과 동시에 대화중이고 600여명의 사람과 사랑하고 있다.

실체 없음은 허망하다.

우리는 나방처럼 그렇게 허허한 날개짓으로 산다.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가치로 믿으면서.

사랑도 사만Thㅏ처럼 어차피 실체가 없다.

가치는 부여하기 나름. 나중에 해석하기 나름.


고백하자면

퇴근 후 집에가서 저 컴퓨터 바탕화면을 볼 때 나에게도 os1이 필요해 라고 생각해 본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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