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돈이 많이 들어가서 수술을 안 받고 싶다고 하셨다. 요즘 뼈주사로 매달 60만 원이 들어가서 미안한데, 수술까지 받으면 자식에게 큰 짐이 된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남편과 자식들은 더 건강해질 수 있으니 수술을 받으라고 권했다.
"세상에 있을 때, 걸어서 바깥구경해야 하지 않겠어!"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뼈주사 맞느라 온몸의 뼈가 늘어지는 느낌이 너무 힘들고, 병원에서 발진 나서 독한 약 먹고 힘들었으며 밥 먹을 때마다 토한 경험이 생생해서 힘든 수술은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병원이 싫어!"
고관절에 무릎, 목 수술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안간힘을 내서 버텼다고 하셨다.
예전에 받은 수술도 견디고 잘 받으셔서 이번에도 잘하실 거라는 가족의 생각은 엄마를 위한 생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엄마가 가족을 위한다고 하신 말을 생각해 보았다.
엄마는 딸들이 친정에 오면 자주 권하는 말이 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냉장고에 이것저것 있으니 찾아 먹어라!"
"좀 누워라, 오느라 힘들지 않았냐!"
"베개는 어디에 있다!"
라고 자신이 해주고 싶은 행동을 입으로 말하셨다.
나는 엄마가 몇 번 말했는데도 딸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건 원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냐?"
엄마는 딸들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셨단다. 그렇게 자신이 느껴져서 말한 것이라고.
나는 엄마와 대화하며 원하는 것을 해주기도 하고 안 해주기도 하면서 예를 들어 보였다. 엄마가 냉장고에서 딸기를 찾아 먹으라고 할 때 그렇게 따라주는 건 딸도 원해서 그런 것이고, 갑자기 딸이 힘들어 보여서 좀 누우라고 할 때 눕지 않고 괜찮다고 사양하는 건 딸이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도 딸이 원하는 걸 해주고 딸이 기뻐하면 엄마도 기쁘지 않아요?"
"그렇지."
나는 엄마에게 상대가 필요할 것 같은 걸 권해보시라고 했다. 나는 필요할 것 같아 권하는 것이 상대는 필요하지 않다는 걸 느끼신 것 같았다. 엄마와 나는 동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