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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Aug 28. 2024

나무꾼 막내

막내는 공부 중

“엄마 나 큰일 났어!”

“무슨 일인데?”

“나 영어 숙제가 많아서 밤샘해야겠음.”     

8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메시지가 왔다. 나는 ‘AI활용 그림책 동화 만들기 과정’을 배우느라 도서관에 있고, 막내는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중일 거다. 나는 “그래도 숙제니… 힘내!” 하면서 응원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도움 안 되는 말이라고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헐, 일단 와서 밥 먹고 기분 풀길.”     

막내의 답장이 없는 건 통과라는 뜻이다. 9시가 넘어서 집에 왔는데 상 위에 먹다 치우지 않은 벌건 사발면 국물과 볶음밥 그릇이 놓여있고 딸은 방안 침대에서 게임 삼매경이다. 딸은 한 시간반 정도 밥을 먹고 놀고 있었는데, 대뜸 10시가 됐다고 방에 들어오지 말란다.

"나 영어 숙제하니까 엄마 방에 들어오면 천 원! 천 원 줘야 해!"

갑자기 자기 맘대로 규칙을 만들어서 통보했다. 할 수 없다! 공부한다는데 무조건 오케이지.

“아, 알았어!”     

나는 외출복을 벗고 생활복 바지만 겨우 입고 부랴부랴 밖으로 쫓겨났는데 티는 거실에 있는 줄 알고 나온 참이었다.

‘아뿔싸!’ 거실에 티가 없었다. 막내 방에 옷장이 있는데 서랍에서 티를 가져와야 했다.


“어떻게 하면 천 원을 안 주고 티를 가져올 수 있을까?”

별일도 아닌데 고민됐다. 규칙이면서 내기가 된 터라 천 원이 아까웠다. 규칙을 무시하고 가져올 수도 있는데 막내가 공부하겠다고 결의한 마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파투를 내고 싶진 않았다.

“아하, 그러면 되지!”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문밖에서 노크하고 딸을 불렀다.      

“막내야, 엄마 옷 좀 꺼내줄래? 엄마가 왜 자주 입는 아이보리 티. 첫 번째 서랍에 있어. ”

“나 공부 중이야!”

"그럼 어떡하니, 내가 옷도 안 입고 너 공부 끝날 때까지 집안을 돌아다녀야겠니? 엄마 옷 줄 때까지 여기서 계속 기다릴 거야!"

딸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알았어! 옷 줄게. 옷이 어딨는데?"


딸이 한 발짝 물러났다. 나는 문만 열어 들어가지는 않고 딸이 옷을 찾게 말로 내비게이션이 됐다. 사춘기 딸 심부름만 하다가 심부름을 시키니까 재밌어서 속으로 웃음이 났다.

딸은 장난기가 발동해서 옷을 바로 주지 않았다.

"빨리 줘! 네가 나무꾼이니?"

"알았어, 줄게."     

막내는 줄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줬다. ‘푸하하!’ 웃으며 나시 티를 던졌다. 던진 나시 티를 안으며 나는 살짝 선녀가 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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