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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Aug 29. 2024

비닐봉지 안에 제로

버린 양심이 길게 머물고 있는 자리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그늘을 만들어 놓고

저 비닐봉지는 잔뜩 무거워져 누가 쉽게 손대지 않는다

"누가 저곳에 버렸데."

"길가가 다 자기 쓰레기통인줄 아나!"

비닐봉지 안에 제로라는 글자가 보인다


먹을 때는 좋았던 음식이 쓰레기가 될 때

쥐고 있던 그의 손은 무거웠을 테지

그래도 낑낑대는 수고가 필요했을 텐데

비닐봉지 만한 양심이 바람에 곧 터지려고 한다

아무렇게나 쓰러지려고 한다


"저것 먹고 버렸데!"

내가 좋아 먹은 음식이 하대를 받고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고

욕먹을 때

마음도 찜찜할 텐데


버린 양심이 주워 담을 수 없게

묶지 않은 비닐봉지에서 흩어져갈 때

동네 한 바퀴, 아니 사람들의 눈과 귀에 오르내리는

이 서울 한 복판에

이곳을 방문한 외국인의 세상에

씻을 수 없는 찢어진 양심이 뒹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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