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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Sep 17. 2024

명절음식, 그까이 것 내가 다 한다!

 남편 생일이 추석 전날이라 절대 잊을 수 없는 생일이다. 시댁이 부산이라 명절엔 내려가야 하지만 남편이 바쁜 일이 많아서 자주 내려가지 못한다. 그래서 추석은 남편 생일상 겸 명절 음식을 만든다. 내 생일은 지나간 적이 많아도(식구가 모두 잊어버리고 지나간 적도 있으니…. 내가 말을 해줘야 알 때가 많다) 남편 생일은 지나갈 수 없는 생일이다. 남편은 생일만큼은 복을 타고난 것 같다.      


나도 언젠가 한 번이라도 남편에게 밥상을 받아볼 수 있을까? 한 번도 빠짐없이 명절 음식처럼 상을 차려준다. 밖에서 외식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남편이 먼저 얘기해주지 않으면 차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이번 음식을 준비하면서 명절 음식 증후군을 더 느낀 것 같다. 도와주던 큰딸은 삐쳐서 손을 놓고, 중학생 막내와 준비했다.    

  

막내는 동그랑땡과 산적 붙이는 걸 도왔고, 장을 보고 상을 차리고 설거지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거의 내가 했지만 전 부치는 것이 상 차리는 것에 반을 차지하는 기분이 드는데, 그걸 막내가 도와줘서 힘든 마음이 풀렸다.

나는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하지만, 명절증후군을 이기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다. 큰딸의 마음을 생각 못 하고 나만 생각하게 돼서 짜증과 불만에 휩싸였다. 그래도 괜찮다. 딸을 위해서 한다고 한 잔소리가 큰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딸에게 더 사랑을 부어주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니 말이다.      


“엄마가 부탁하면 들어준다고 했잖아! 막내도 도와주는데 뭐가 바빠서 안 도와주니! 과제한다며 게임만 하면서….”

나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딸을 보았다는 생각에 반성이 됐다. 딸도 뭔가 고민이 있는데 그 마음을 잘 살피지 못한 것 같다.

“엄마도 예전과 다르게 몸이 힘들어! 너도 이제 성인이잖아. 엄마를 도와줘야지!”

라고 했는데, 엄마가 요구만 한다고 생각했다. 딸에게 불평하다가 느낀 건, 내가 딸을 사랑의 눈으로 보지 못했고 불만의 눈으로 꼬집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딸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팩트를 날렸다. 딸은 이제 대학교 1학년이고 졸업해서 취업하면 된다고 하면서 학점도 소홀하게 생각했는데, 그것이 나는 답답했다. 하지만 딸의 고민과 힘든 점을 생각지 않고 내 생각으로만 딸에게 얘기했다는 걸 느꼈고, 딸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마음속으로 들어가 봤다. 내 깊은 심연 속에서,

‘더 기다려주라고 한다. 사랑으로 기다려주라고.’     


아이마다 엄마가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하는 말에 생각하는 것과 반응도 다른 것 같다. 자녀마다 다르다는 걸 더 생각하면서 이해하고 존중하며 더 신경을 써야겠다.

그리고 새롭게 떠오른 생각은 자녀에게 요구하거나 부탁했을 때 도와주지 않으면 불평불만 하지 말고 내가 다 겠다는 마음을 갖자는 것이다. 자녀들이 스스로 도와주겠다고 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번 명절 음식을 준비하면서 처음엔 큰딸에게 불평불했는데, 그 이유를 찾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따라가니까 내가 처음 생각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딸을 더 위하는 마음이 됐다. 그리고 예전엔 생각지 못한 방법도 떠올랐다.

‘내가 더 운동하고 건강해져서 60대, 70대가 되어도 자녀들을 도와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명절 음식도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다 하면 되지 뭐! 그까짓 것이 뭐라고!’


불평불만 하지 않고 사랑으로 묵묵히 내 일을 하고 아이들을 도와주면 아이들도 그 마음을 알고 도와주는 든든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명절 음식, 그까이 것 내가 다 한다! 여태껏 그랬는데, 계속 못 할까!


장 보는 것, 채소 다듬는 것, 전 부치는 것, 상 차리는 것, 설거지까지. 잘하다가 불만이 터지면 모든 정성과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다 한다는 걸 전제로 하면 자녀들이 도와주지 는 것에 불평불만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원래 내 일이라는 책임감, 나를 주인으로 만드는 책임감에 사랑이 더해지면 몸은 힘들지라도 불만 없이 다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이 드니까 혼자 설거지를 해도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더라. 그게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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