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점심이다! 토요일부터 명절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해서 월요일에 남편 생일 겸, 제사를 지내고 추석인 오늘은 너무 가뿐하고 행복하다. 준비한 음식으로 일주일은 반찬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주부들에게는 이런 평온한 휴일 같은 날은 마음껏 즐겨야 한다. 이런 사소한 기쁨을 느끼라고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거라는 마음가짐이 또 내년 설과 추석을 맞이할 수 있다.
오늘 아침에 소파에 누워서 “동치미”를 보고 있었다. 뭔가 또 하나 내 마음에 건질 게 없나 찾으며 보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 아나운서가 아내 임신했을 때 못 해줘서 여태껏 아내가 그 얘기한다고 하는 말이 걸렸다.
“아이를 낳으면 꽃다발을 사서 오세요!”
그 아나운서는 비싸다고 생각하고 사 오지 않았고, 아내에겐 꽃가게 문이 안 열려서 못 사 왔다고 했는데 나중에 거짓말이 탄로가 났단다.
‘아뿔싸!’
저분 단디 실수했네! 실수가 아니라 죄일 수도 있지. 아내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으니, 그게 한이 되는 건데….
그렇다. 나도 옛 추억을 바로 소환했다.
‘나도 그래!’
예전에는 남편만 보면 그 생각이 나서 꼴 보기 싫었다. 딸 임신했을 때는 부탁을 안 했고, 남편한테 말해야 할 정도로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아들을 임신했을 때는 정말 장어구이가 먹고 싶었다. 너무 먹고 싶어서 그것도 내가 아니라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먹고 싶은 건데, 임신했을 때 먹고 싶은 거 안 먹으면 아이가 짝눈으로 나온다카던데!
나는 사정하다시피 했지만 남편은 장어솥밥을 사줬다. 장어회 같은 게 두세 점 들어있었던 것 같다. 감질나게 먹고 두고두고 한스러웠다. 그래도 생각하고 사준 건데 말이다. 그런데,
‘아뿔싸!’
정말 짝눈인 아들이 태어났다.
딸에 비해 약해서 잔병치레가 많은 아들, 비염을 달고 살고 아토피에 위장도 안 좋고, 남편의 속을 다 닮아 태어났다.
‘그때 장어만 실컷 먹었어도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을 텐데….’
아들이 몸이 안 좋을 때마다 남편이 밉더라. 내가 먹을 게 아니라 아이가 원한 거라고요!
나는 아나운서의 일화를 듣고 느꼈다. 그때 남편도 직장을 다녔다가 퇴직하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아주 힘들었을 거야. 장어구이 사주는 것도 아까웠을 거야. 그 아나운서가 아까워한 것처럼. 그분도 신입 아나운서라서 월급이 적었는데 꽃다발이 비쌌더라고 했다.
그래도아기를 낳은 평생 한 번뿐인 축복의 날인데,무리해서라도 꽃다발을 사줬어야.
'내가 남편이라면 빚을 내서라도 사줬을 거야!'
아, 이 말하고 속이 시원한 건 뭐지!
김병지 전 축구선수아내도 둘째를 낳을 때 남편이 곁에 없었고 진통을 겪으며 혼자 운전해서 병원에 갔다고 했다. 아내가 눈을 훔치며 말했다. 내 눈도 찡해졌다. 그때가 월드컵을 치를 때였다고.
이해가 십분 됐다.
김병지 전 축구선수의 아내 얘기를 들으니 위로가 된다! 나보다 아픔을 더겪은 사람의 얘기가 위로가 되나 보다.
그리고 느낀다.
나도 임신했을 때 남편이 잘해줬다면, 못 받아서 한이 된 아내의 마음을 몰랐을 거야.
‘저런!’
‘어째!’
‘남편이 너무했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 정도의 마음이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티브이를 보면서 공감하고 눈물도 같이 흘릴 수 있다. 이보다 감사한 경우가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