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용량 팝콘
봉지 크기완 상관없이 과자가 바닥날 때까지 먹는 법칙
아들이 학원에서 일찍 왔다. 연휴여서 그런 것 같다. 8시 10분쯤 비빔밥을 먹고 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던 아들이 거실로 나왔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아들 손에는 팝콘과 콜라가 들려있었다.
“대용량 팝콘을 사야 하나?”
아들이 들고 있던 팝콘은 80g이 들어있는 작은 봉지였다.
“작은 거 사면 적게 먹지!”
“엄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순간 나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별일도 아닌 것으로 갈등이 생길 수 있는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그 말도 하지 말걸.’
나는 속으로 조금 후회했다. 과자를 대용량으로 사면 많이 먹게 되고 그러다 배탈이 날까 봐 걱정돼서 한 말인데, 이런 얘기를 하면 아들이 잔소리로 들을 게 뻔하다. 내 생각과 다른 아들을 나한테 끼워 맞추려고 하면 자꾸 언 나갈 것이다. 잘못된 퍼즐을 욱여넣는 꼴이 될 거다.
“나 속 괜찮아요!, 엄마가 내 속을 알아요!, 팝콘은 밀가루는 없고 옥수수라 괜찮아요!, 의사 선생님이 자기가 뭘 먹으면 안 되는지(배탈이 나는지) 자신이 더 잘 안다고 했어요, 엄만 먹을 때마다 잔소리…!”
머릿속에서 아들의 레퍼토리가 지나간다. 아들도 엄마가 하는 잔소리의 패턴을 알 것이다. 나는 아토피가 있고 자주 탈이 나는 아들에게 밀가루 음식과 콜라는 먹지 말라고 했었는데, 아들은 먹어도 괜찮은데 좋아하는 걸 못 먹게 한다며 날 이해 못 하겠다고 했었다. 결국은 적당히 먹는 쪽으로 방향이 잡히고 있다. 가끔 오버해서 배탈이 나기도 하지만 먹지 못하게 하는 건 역효과가 돼서 그렇게는 안 한다.
나는 얼마 전에 400g 봉지의 새우깡을 앉은자리에서 다 먹고 후회한 적이 있다. 먹는 동안은 모르는데 먹고 나서 30분쯤 지나면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들었다. 좋아하는 것일수록 안 사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없으면 안 먹게 되니….
먹을 때는 과자가 손에 착착 감기며 박자를 맞춰 입안으로 들어가 속을 채운다. 짭조름하고 아삭한 맛을 느끼는 것도 뱃속에 들어가는 제일 중요한 일련의 과정이다. 채워지는 속과 맛의 기쁨이 봉지 안에서 바닥을 드러냈을 때, 바스락거리는 빈 허공에서 헛손질하는 손가락의 허전함이 먹었던 기억을 없앤다. 찾는 데 없는 공허가 순식간에 속을 메운다. 입과 뱃속에서는 계속 과자가 더 없냐고 부르고, 봉지에는 가루만 날리는 허무!
너무 다행이다. 여기서 멈출 수 있기에.
대용량으로 과자를 사면 오래 먹을 것 같고 든든한 마음이 들지만, 생각의 착시! 배 속에 채울 수 있는 양은 큰 봉지든, 작은 봉지든 관계없이 똑같은 것 같다. 최대치는 모두 봉지에 가루가 날릴 때까지. 이런 경험을 한 터라 아들에게 작은 봉지의 과자를 샀으면 싶었는데, 소용없는 얘기를 했고 아들은 서운했나 보다.
“엄만, 대용량 팝콘 사는 얘기를 하는데, 적은 걸 사라고요!”
나는 침묵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설거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아들은 내가 대답하지 않자, 흥미를 잃었는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5분 뒤, 아들은 대용량이라고 적혀있는 팝콘을 사 왔다!
‘와그작와그작.’
‘꿀꺽꿀꺽.’
큰 봉지, 작은 봉지의 팝콘과 시원한 콜라가 아들 책상에서 일련의 과정을 잘 수행하고 있다.
자주 배탈 날 때는 저지하더라도, 가끔은 아들이 즐기는 일련의 과정을 기꺼이 기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