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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Sep 29. 2024

밀크 아이스크림

요즘 딸 얘기에 무조건 받아주지 않고 태클을 몇 번 걸었는데, 결정적으로 큰딸이 나와 얘기하지 않으려고 작심한 것은 화장실 목욕할 때 생긴 일 때문이었다. 하필 딸과 아들이 거실 화장실을 같이 써야 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매번 아들이 하는 림 노래가 있다.

“누나, 로션과 칫솔 꺼내줘!”

“안 돼,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화장실이 두 개라도 주로 쓰는 화장실이 겹치다 보니, 느긋하게 일을 봐야 하는 딸과 빨리 일을 봐야 하는 아들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로 늦은 밤에 목욕하던 아이들이 그날은 점심시간에 둘이 각기 다른 화장실에서 목욕해야 했는데, 거실 화장실에 있는 자기 로션과 칫솔이 아들은 필요했던 거다. 아들이 먼저 들어가면 문제가 없는데, 큰딸이 먼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날도 부딪히는 일이 생겼다. 예전에 큰딸은 동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툴툴대며 꺼내 줬는데, 그날은 샤워 중이라서 그러고 싶지 않았나 보다.


“누나, 나, 들어간다!”

“안 돼, 절대 들어오지 마!”

아들은 학원에 가야 해서 마음이 급했다. 나는 아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큰딸에게 들어간다고 하고 문을 열고 로션과 칫솔을 꺼내서 아들에게 주었다. 화장실 욕조에는 샤워커튼이 있어서 딸의 몸을 보지 않는데, 딸은 화를 내며 왜 들어왔냐고 노발대발하며 오히려 자기가 샤워커튼을 조금 열고 뭐라고 나무랐다. 나는 딸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같은 여잔데 어때!”

나는 내 말만 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물건을 가지고 나왔고, 이 정도의 행동은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딸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해서 화났는지 삐쳐서 그 일 이후로는 말을 안 했다. 저녁때는 집을 나가서 밥 먹고 늦게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에 소파에 앉은 딸을 보고 어제 어디 갔었냐고 물었는데, 대구를 안 했고 아침만 먹고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딸이 싫어하는 행동을 했으니 또 얼마나 잘해주어야 할지 고민됐다.


‘다섯 배의 사랑을 주어야 하나?’

점심을 거르고 자고 있던 큰딸은 3시쯤 일어나 시리얼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속도 상하고 삐친 딸을 어떻게 하면 풀어줄 수 있을지 생각하며 4시쯤 산책 겸 운동하러 집을 나섰다.

카페에서 아포가토를 먹고 딸이 좋아하는 밀크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카페는 종이컵에 아이스크림을 넣어서 주지, 녹지 않게 하는 포장은 안 해준다고 하며 가지고 가면서 먹으라고 했다. 딸에게 선물하려고 가져가다가는 다 녹을 판이었다. 딸이 이 카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면 딸에게 먹일 수 있을지 생각한 끝에 지하에 있는 다이소에 가서 동그란 플라스틱 통을 사서 4층 그 카페로 갔다.


“밀크 아이스크림 한 개 주세요.”

“이 통에 넣으려고 하는데 비닐봉지 한 개 주실 수 없나요?”

“그 통에 그냥 넣으면 되잖아요.”

아르바이트생은 내가 사 온 통을 보며 말했다.

“새 통이라 안 깨끗해서요.”

나는 줄 사람이 있어서 그렇고 녹을 까봐 잘 담아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도움을 주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비닐봉지를 한 개 뜯어서 줄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아르바이트생은 남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건 해줄 수 없네요.”

짧은 답만 돌아왔다. 다른 방법은 애써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누런 티슈를 두 장 깔고 아이스크림을 조심히 통해 넣었다. 티슈를 깔면 그래도 통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낼 때 수월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이스크림이 티슈에 달라붙었지만 딸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더 커서 괜찮았다.


백화점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6분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아이스크림이 많이 녹을 까봐 버스를 기다리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집으로 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녹는 게  걱정됐다. 나는 가는 중에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들어가 월드콘을 2개 사서 검은 봉지에 카페에서 산 아이스크림과 함께 넣었다. 집에 들어와서 티슈를 걷어내고 보니, 다행이다! 조금 녹았다.



‘똑똑'

나는 큰딸 방문을 열고 환하게 딸을 보았다.

“딸아, 네가 좋아하는 그 카페에서 아이스크림 사 왔어!”

“뭔데?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넣어 놔, 나중에 먹을게.”     

휴―, 딸이 말문을 열었다. 그래도 딸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이려고 쏟은 정성이 딸의 마음에 닿은 것 같아서 뿌듯하다. 자녀들과 갈등이 없을 순 없다. 때론 안 싸우려고 애쓰는 것보다 부딪히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나는 딸과 밀당하면서 사이가 더 돈독해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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