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과 나는 “제주항공 참사” 기사를 보고 다투게 되었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29일 “무안 항공 참사”로 뜬 뉴스 제목부터 큰딸과 옥신각신했다. 딸은 "제주항공 참사"라고 해야 한다고 하고, 나는 어느 곳에서 발생했는지가 중요해서 그렇게 제목이 붙여지는 거라고 하고 서로의 말이 옳다고 팽팽하게 맞서는 상태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뉴스에서 제목이 정정되고 있었다.
"제목이 네 말처럼 바뀌고 있어. 무안항공 참사에서 제주항공 참사라고."
"거봐 내 말이 맞다니까."
‘근데 무안공항 아닌가?’
나는 의아해했지만 왜 그런지 모르게 믿고 있었다. 여객기에 탑승한 대부분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과 사연, 이런 일이 생긴 원인에 대한 영상도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고 “무안항공 참사”에 대한 제목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믿어버리게 된 것이었다.
여객기 참사의 제목이 정정되면서 나는 딸의 말에 무조건 수긍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딸과 요즘 잦은 생각의 차이로 갈등이 있어서 그런지, 식사할 때도 딸은 대화를 하지 않고 핸드폰만 봐서 더 무관심해 보였다. 섭섭했지만 내가 딸의 말에 귀를 더 귀 기울이지 못한 것에 미안했기에, 내 말이 맞다고우기진 않는지 신경 쓰게 됐다.
새해인데 아이들 얼굴도 마냥 기쁘지는 않아 보였다.
“밥 먹으러 갈까?”
나는 아침으로 떡국을 차려서 먹이고, 점심은 외식하기로 했다.
집을 나와 도로를 아이들과 걷고 있는데, 아들은 선크림을 바르고 오겠다며 집으로 갔다.
나는 막내를 떠올렸다. 새해부터 혼자 마라탕을 먹겠다며 자기 방에서 꼼짝도 안 했는데, 몇 번 설득하려고 했지만 어려워서 막내만 두고 나온 터였다. 나는 가족이 같이 외식을 하면 좋지 않냐고 한 말이 아이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건 엄마의 마음일 뿐이라고 했다. 특히 큰딸은 막내에게 강요하지 말라고했다.
“그런 거야?”
“그래, 엄마가 가기 싫어하는데 너무 몰아붙이는 거야!”
몇 번 얘기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나로선 이해가 잘 안 됐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같아서 수긍했다.
집과 가까운 곳에 롯데몰이 있어서 그곳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큰딸과 가는 길인데, 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좀 머쓱해서 나는팔짱을끼려고 했는데, 딸은끼려고 하는 팔을 뿌리쳤다. 생각보다 딸은 많이 삐쳐있었다.
음식점에서 세트 메뉴로 낙지볶음과 보쌈을 주문해서 먹고, 아들은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다. 같이 보자고 했지만 아들은 메가박스에 가서 본다고 해서 먼저 보냈다.
“엄마랑 영화 볼래?”
“무슨 영화?”
딸이 삐쳐서 안 볼 줄 알았는데 영화는 보고 싶었나 보다. 5층에 있는 롯데시네마에서 딸은 영화 <하얼빈>을 골랐다. 영화 시작이 한 시간은 남아있었다. 우리는 공차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191번 손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나는 카페라떼, 딸은 딸기 밀크티를 골랐다.
“카페라떼 맛이 이상해? 커피 맛이 않나! 홍차 맛이 나는데?”
“원래 그래, 여기는 밀크티 전문 카페잖아! 모든 음료에 홍차가 들어있다고.”
“으응, 그렇구나!”
나는 의심이 들었지만, 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공차”에서 커피는 잘 안 사 먹었기 때문에 딸의 말을 섣불리 판단해서 네 말이 틀렸다고 하면, 딸은 내 말을 더 안 믿어줄 것 같았다.
‘내가 모르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이상해, 커피 맛이 안 난단 말이야….’
“홍차 맛이 너무 강해서 커피 맛이 안 나나 봐! 다음엔 이 카페에서커피는 안 마셔야 할 것 같아.”
딸은 자꾸 이상하다는 내 말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플라스틱 커피잔 바닥에 펄이 잔뜩 가라앉았어도 “공차”이기 때문이라는 것에 우리는 의심하지 않았다.
“191번 손님 맞으시죠?”
“네.”
중년의 점원이 다가와 탁자를 닦더니 내가 먹고 있었던 커피를 조용히 가져가서 재빨리 다른 새 음료를 내 앞에다 가져다 놓았다.
“카페라떼 시키셨죠?”
“아, 네.”
나는 졸지에 홍차도 반쯤 먹고 커피도 마시게 됐다. 나는 여점원이 챙겨준 것을 의심 없이 가져왔었는데, 내 것만 잘못 준 것이었다.
"맞아, 바로 이 맛이지!"
중년의 남자 점원은 카페 주인 같았다. 191번 손님인 나를 찾고 있다가 딸과 얘기하는 걸 듣고는 식탁을 닦는 척 내게 물었던 것이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딸의 말이 다 옳지는 않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 덤 앤 더머네!”
“나도 이곳에 오면 홍차나 딸기라떼만 먹는데, 내가 먹고 있는 것도 딸기 밀크티잖아. 그래서 모든 음료에 홍차가 들어가는 줄 알았지.”
딸은 애매하지 않고 확실한 상황을 두 눈으로 보자 좀 미안해했고 내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했다. 말투도 부드러워지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서로 영화평을 하느라 주거니 받거니 화기애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