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아들이 몸에 두드러기가 난다며 지나가는 말로 말했는데 그제부터 몸에 열이 난다고 혹시 독감 아니냐고 했다. 안 그래도 막내딸이 독감에서 회복한 지 사일쯤 됐고 막내 반에도 독감으로 최근 8명이 학교에 빠졌다고 했다.
11월 초하루부터 낌새가 보였는데 어제 독감 걸린 것 같다며 병원에 다녀왔다. 의사가 요즘엔 대부분 독감 아니면 코로나라고 하며 두 가지 검사를 받으라고 했단다. 둘 다 아닌데 몸에 열이 났다. 의사는 염증이 있으니 피부과에 가보라고 한 모양이다. 나도 빨리 가보라고 하고 학교 담임선생님께 알렸다. 아들이 일반 의원에서 진료를 보고 오는 줄 알았는데 종합병원에 있다며 전화가 왔다. 하필이면 동아리 모임에서 한참 얘기 중인데 전화가 온 거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들은 근처 종합병원에 와 있는데 접수를 어떻게 하냐고 나보고 해달라는 거였다.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지만 늘 내가 해주는 습관이 단단히 들여져서 병원에 접수하는 것도 부탁했다.
“엄마가 지금 여기 있고 너는 거기에 있는데, 엄마가 어떻게 접수해! 큰 병원이라 주변에 안내해 주시는 분 있을 거니까 소아청소년과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고 가서 접수해. 엄마 대화 중에 나왔으니까 끊을 게.”
아들은 어찌어찌해서 소아청소년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나는 아들 전화통화 이후 머리가 멍해졌다. 동아리 회원들과 얘기를 해도 생각은 콩밭에 있고 집중이 안 됐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의 얘기에 섞였다. 동아리 모임이 오전 11시 40분쯤 끝났을 거다. 부랴부랴 집으로 갔는데 아들이 와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엄마, 약을 버스에 두고 내렸어요!”
나는 아들이 아픈 게 느껴지지 않고 약을 두고 내렸다는 아들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컸다.
“약을 두고 내리면 어떻게 해! 약은 빨리 먹어야 낳는다고! 그걸 어떻게 찾아!”
“내가 알아서 할게요. 버스 기사 아저씨와 통화됐어요. 차고지에 도착하면 연락 주기로 했어요.”
“뭐라고!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니? 엄마가 병원에 가서 다시 처방전 받아올게.”
“놔두세요. 제가 찾아온다고 말했잖아요. 그만 말해요!” 나는 아들을 위해서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아들은 자기가 처리하겠다고 하며 엄마가 쓸데없이 일을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한 번 더 물어보니 아들은 몇 번을 얘기해야 하냐며 핀잔을 줬다. 속상해서 아들과 말하기 싫었다. 하지만 버스 기사 연락이 언제 올까? 아들 몸에는 온통 수포가 올라와서 폐가 답답하다고 할 지경인데. 내가 걱정하는 걸 아들은 모른다는 마음에 더 마음이 아팠다.
“평소에 차 안 타고 다니잖아! 왜 오늘 같은 날 버스를 타고 왔어?”
“아파서 버스 타고 왔다고요!”
나는 더 이상 대화가 안 되리라는 걸 알았다. 엄마가 약을 다시 타오겠다고 말하는 것도.
아들에게 부랴부랴 점심을 차려주고 나도 점심을 먹으려고 차리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병원에 다녀올게. 내 말 좀 들어봐.”
“아까 내가 찾아온다고 했잖아요!”
“너 수두 다른 사람한테 감염돼. 그건 피해를 주는 거야. 집에 그냥 있어. 엄마가 약 타서 오는 게 네가 전화 기다리는 것보다 빠를걸.”
“알았어요. 그럼, 병원에 다녀오세요.”
나는 겨우 아들을 설득하고 점심을 먹고 병원에 다녀오려고 했다. 그런데 방에서 문 닫고 있던 아들이 화를 내는 거다.
“엄마, 밥 먹으면 시간이 늦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내가 지금 밥을 먹으면 약은 언제 먹어요!”
순간 아들의 말에 서러움이 폭발했다.
“엄마는 밥도 먹지 말라는 거냐! 엄마가 건강해야 너희들 돌보는 거라고! 엄마가 밥을 먹고 힘내야지, 내가 약을 타오려면 1시간 이상 걸리니까 3시에나 올 수 있다고! 그때까지 굶으라고!”
밥을 먹는 것도 아들 눈치를 봐야 한다니 너무 울컥했다. 아들은 더 이상 대구는 안 했지만 서운하고 내 속을 모르고 자기 생각만 하는 아들이 미웠다.
‘모든 걸 자기중심으로 생각해!’
어찌 됐든 나는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밥을 먹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갔는데 종합병원이라 절차가 복잡했다. 외래 약국에 가서 처방전을 다시 받았고 동네 약국에서 약을 받아오려고 했는데 이미 약을 받은 상태라 어렵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새로 처방전을 발급받아야 하고 비급여로 나오기 때문에 약값이 5만 원은 족히 된다고 얘기해 줬다.
‘오 마이 갓’
만 팔천 원하는 약이 오만 원이 넘는다고! 약값에 칠만 원을 써야 한다는 게 아깝기도 하고 아픈 아들을 더 이상 혼낼 수도 없어서 속앓이 했다. 아들한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말하고 버스 기사님 전화가 왔냐고 물었다. 아직 연락은 안 왔고 기다린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언제 오냐고 자꾸 물었다. 엄마 속도 모르면서 재촉하기는.
나는 다시 병원 소아청소년과에 가서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는 다시 진료해야 하니 내일 나오라고 했다. 나는 아들이 염증이 심해져서 오늘 꼭 약을 먹어야 하니 방법을 좀 찾아달라고 청했다. 간호사는 담당 의사 진료가 끝났다고 하며 다른 의사의 진료가 가능한지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간호사의 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데 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간호사가 불렀다. 다행히 담당 선생님과 통화가 돼서 약을 다시 처방해 주셨다고 했다. 처방전을 받아 가는 내 마음은 큰 짐을 내려놓는 기분으로 가벼웠다. 약국에 다시 들러 처방전을 주는데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르게 여유가 생겼다. 약을 처방받고 받는 영수증도 너무 귀하게 느껴졌다.
약사가 약과 영수증을 주며 잃어버리지 않게 잘 들고 가라고 했다. 나는 인사를 하고 약봉지를 손에 꼭 쥐고 살랑살랑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왔는데 학교를 마치고 온 막내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나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고 오빠가 수두에 걸렸으니까, 오빠한테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귀가 밝은 아들이 빨리 약을 달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가져다줄게.”
나는 약봉지를 아들 방 앞에 놓고 똑똑 문을 두드렸다. 그때가 4시쯤 됐으니까, 병원에서 약을 받아오는 데만 2시간 걸린 거다. 아들도 속으로는 미안해서 아까 약을 찾아온다고 했고, 아프니까 약부터 찾았던 거고...
아들을 이해하면 됐지, 다른 사사로운 생각이 필요할까?
아들 덕분에, 처방받은 약을 분실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고 아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내가 해결해 주지 누가 해주겠어.’라는 자부심도 생겼다. 아들이 급할 때 믿고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이 엄마 아닌가. 나도 그 마음을 먼저 생각하고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