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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 나비 Jun 20. 2024

아들 피부가 달라졌어요!

좋아서 하기

아들은 얼굴에 트러블이 생기면 화장품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고, 나는 기존 거 사용하면서 먹는 걸 바꿔보라는 주의여서 둘이 팽팽히 맞섰다. 아토피도 있어서 연고와 로션도 아들 피부에 맞게 항상 갖추고 있는데 따로 화장품을 산다는 아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피부가 안 좋아서 그러는데 엄마는 이해도 못 하고, 왜 안 사주는데요?”


씩씩대며 대꾸하기도 하고, 돈 때문에 그러냐고도 하고, 집에 있는 거로 피부가 좋아지지 않는다고 하며 앞으로 자기 화장품은 직접 고르겠다고 했다. 나는 아들이 봐둔 화장품이 있다고 해서 팔만 원 정도 하는 화장품 세트를 사줬다. 그런데 이주쯤 지났을까? 또 화장품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얼마 전에 샀는데 또 사냐며 다 쓰면 사주겠다고 했다.

“나한테 안 맞아!”

“그러면 왜 샀니?”


머리에 김이 올라왔다. 아들은 가게에서 추천해 줘서 샀는데 이번에는 꼭 맞는 화장품을 사겠다고 했다. 안 사주려고 하다가 한 번 더 믿기로 하고 카드를 줬다. 아들은 크림만 사겠다고 하고 상점에 가서 여드름에 좋다는 을 사 왔다. 그것도 얼마 못 가서 버리라고 내놓았다. 몇 번 안 쓴 것이다! 나는 크림의 설명서를 읽었다. 여드름과 미백에 주름 개선까지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10대 피부인데 미백에 주름 개선이 왜 필요해. 이건 나한테나 필요한 거지!’


나는 사춘기 아들 피부보다 40대 후반인 내 피부에 더 맞다고 생각했고 써보니까 그랬다. 아들은 미안한지 집에 있는 로션으로 버티면서 한동안 얘기가 없었다. 아들이 피부과에 가 보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는데, 한 번 가 보고는 가지 않았다. 약을 먹어도 좀처럼 아들이 원하는 대로 피부가 좋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아들이 배탈이 자주 났고,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병원에 갔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이었다. 학교도 자주 결석하게 되자, 나는 속이 타들어 갔다.

“내가 탄산음료는 먹지 말라고 했지! 아빠가 밀가루 음식도 먹지 말라고 했고.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에구, 속상해!”


나는 아들이 청개구리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았다. 의사 선생님도 탄산음료는 몸에 안 좋다며 안 먹는 게 좋다고 했는데, 아들은 늘 자기 말이 옳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이 몸에 안 좋은 건 스스로 알 거라고 했어요. 나는 탄산음료와 햄버거가 몸에 맞아요. 그것 먹어서 탈이 난 게 아니라고요!”

아들과 나는 팽팽하게 일치점이 없이 서로 일방적인 말만 했다.


이런 갈등이 몇 차례 있고 난 뒤 몇 개월이 흘렀다. 작년 10월쯤, 아들이 수두에 걸리고 말았다. 평소에 손을 잘 안 씻는 습관 때문에 그럴까, 비염이 있어서 손을 자주 코에 가져가는 데 그것 때문에 세균이 들어갔을까, 마스크를 잘 안 끼고 다녀서 그럴까, 새벽 한두 시까지 안 자서 면역력이 떨어진 걸까? 온갖 생각들이 스쳤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고, 얼굴은 검게 변했고, 몸을 가눌 수도 없게 되어서 종합병원 격리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나는 아들을 간호하면서 다른 생각은 안 들었다.

“제발, 청개구리 아들이어도 좋으니 낫게 해 주세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주변에서도 낫길 기원해 주었고 아들은 병원에서 항생제를 맞으며 점점 회복되어 일주일 만에 퇴원했다. 아들은 몸이 좋아지니 마음도 성장한 것 같았다.

처음엔 엄마와 함께 있기 싫다고 집에 가라고 했는데 병원에 물어보니 아직 청소년이기 때문에 보호자가 항상 곁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있게 됐는데, 자기가 아플 때 엄마가 없으면 안 될 때가 있고, 식사 외에 먹고 싶은 것도 병원 안에 있는 음식점이나 편의점에서 사다 주니까 고마워했다. 아들은 집에 있을 때 느끼지 못한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해가 바뀐 1월 중순이다. 아들은 작년 12월부터 연기학원에 다니게 됐다. 방황도 하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나와 남편은 아들의 적성을 생각해서 연기학원에 보내기로 했다. 아들은 방학이라도 저녁 7시부터 세 시간 수업이 있는데 일찍 가서 연습했다. 점심을 먹고 가방 챙겨서 학원에 간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에너지를 쏟고 기쁘게 가는 아들을 보면 흐뭇하고 대견스럽다.

아들이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엄마, 이제 탄산음료 안 먹을래요. 밀가루 음식도 안 먹기로 했어요!”

“왜, 그렇게 좋아하는걸?”

나는 신기하고 궁금해서 물었는데, 아들이 전날 탄산음료를 3병 먹었는데 왠지 이렇게 먹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다른 친구들보다 과식하는 습관을 고치고 싶은 건지. 아직 수두의 흉터가 있고 여드름과 뾰루지를 달고 사는데, 그동안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던 아들이 이런 말을 해주니까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 같았다. 기적 같은 말이었다.


아들은 연기학원에 같은 반 친구들이 다 정이 가고 식구 같다고 했다. 친구 셋이 약속했는데 피부관리를 위해 밀가루 음식은 먹지 않기로 했단다. 먹는 친구는 저녁 내기로 했다고.

아들은 ‘작심삼일’을 지키고 계속 밀가루 음식을 안 먹는다. 통밀로 만든 빵을 만들어줘도 입에 안 대더라. 아들의 말이 있었던 후로 이주쯤 지났는데, 아들 얼굴이 많이 고와졌다. 뾰루지도 들어가고 드문드문 여드름이 작게 보일 뿐이었다.


나도 아들을 위해서 어떤 음식은 먹지 말라고 꾸중했었지만 크게 도움은 못 되었다. 그래서 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에 몸에 안 좋을 것 같은 것은 줄이는 방향으로 가끔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는 따로 사 먹으라고 한 달에 두 번 더 용돈을 주었다. 그러는 사이 아들도 스스로 피부를 위해 그 음식을 안 먹게 되더라. 먹는 기쁨보다 더 좋은 기쁨을 아들이 안 것이다. 연기학원에 다니면서 안경을 쓰던 아이가 렌즈를 끼고, 피부에 신경을 더 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음식 조절이 된 것 같다. 누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아들이 대견스럽고 한층 성장한 것 같다.

나는 늘 아들을 응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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