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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 나비 Jun 20. 2024

카드를 잃어버려 감사한 날

더 이해하기

아침에 화장실에서 ‘팍’하고 소리가 났다. 나는 신경이 쓰였지만, 화장실에 아들이 있었고 아무 말이 없길래 나는 주방에서 하던 설거지를 마저 했다. 아들이 볼일을 마치고 나와 말했다.

“엄마, 샤워기가 깨졌어요!”

아들은 식탁에 있는 핸드폰이 떨어져서 주울 때처럼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그래?”

나는 큰일은 아니지만 아들이 부주의하다고 생각하며 화장실 욕조 주변을 살펴보았다. 샤워기 손잡이 부분이 깨져있었다.

“알았어―”

나는 기분은 나빴지만 뭐라고 하면 아들이 싫어할 것 같고 갈등이 생길까 봐 그렇고, 마트에 가서 만 원에 살 수 있는 물건이라 그냥 넘어갔다.

이 사소한 사건이 무슨 암시 같은 것이었나?




오늘은 12월 첫날,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딸이 학원에 처음 가는 날이라서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고 돌아와. 또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의 저녁을 4시 반에 차려야 했다. 아들은 6시 반까지 새로운 학원에 가야 했는데 1시간이나 걸리는 학원이었다. 아들이 학원에 다시 다니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진로에 고민도 많았고 친구와 사귀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아들이 1학기 중반에 영, 수학원을 안 다니겠다고 하고선 공부와 멀어졌다.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고, 중학교 2학년 때는 댄스학원에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그때는 아들을 말렸다. 고등학교 2학년이란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아 나도 마음이 조급해졌다. 뭘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들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나는 집 근처에 있는 텃밭을 분양받아 작물을 심어 가꾸고 있었는데 옆 텃밭 아주머니와 인사를 하며 지내게 됐다. 어느 날, 나는 자연스럽게 자녀 얘기를 하면서 아들 진로에 관한 얘기도 꺼냈다. 그 아주머니가 자기 딸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었다. 딸이 연기학원을 다녀서 작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만족하며 잘 다닌다고 했다. 나는 아들이 평소에 ‘인스타’에 자신의 춤을 자주 올리고 조회수도 많다고 자랑했을 때는 시큰둥했는데 아들의 진로를 생각해 보니 연기가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연기학원에 다녀 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춤과 노래, 연기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미리 상담을 받았고 오늘 배우러 가는 첫째 날이다.




밥을 먹고 출발하기 위해 신발을 신는 아들에게 슬리퍼는 신지 말고 가라고 했다. 나는 ‘방한 실내화’라고 얘기해야 하는데 잘못 말했다.

“겨울에 슬리퍼를 누가 신고 가요? 추운데….”

“그래, 그렇지”

‘나는 그 신발을 신지 말고 운동화를 신고 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들은 인사를 하고 나갔다.

핸드폰 문자로 아들에게 도착하면 잘 도착했다고 문자 주라고 말하고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안도감도 6시 24분까지만 이었다.

“도착했니?”

나는 아들에게 전화했다.

“아직, 아니요. 가고 있어요.”

나는 전화를 끊고 ‘알아서 가겠지!’ 하고 큰딸이 먹은 저녁 설거지를 하고, 학원에서 돌아온 막내딸의 저녁을 차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수업료를 내야 하는데 카드를 잃어버렸다는 거다. 아침에 샤워기를 부쉈을 때도 참았던 화가 입에서 줄줄 나왔다.

“알았어, 학원 선생님께는 엄마가 연락할게. 수업 잘 받고 와.”


속에서는 천불이 났고, 점점 땔감 같은 욕이 내 마음을 더 활활 타오르게 했다. 도대체 왜 잃어버린 건지. 학원 첫째 날이고 수업료를 내야 하는 날인데 자기 지갑은 안 잃어버리면서 엄마 카드는 잃어버렸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나는 아까 전화했을 때 “네 지갑에 카드를 넣었으면 안 잃어버렸을 거 아니니!”라고 말했지만, 더 화를 내지는 못했다. 아들은 주머니에 넣었는데 잃어버렸다고 했지만 자주 그렇게 잃어버렸던 적이 있어서 정말 물건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아들이 미웠다.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지, 일단 입에서 나오는 미운 말들을 잠재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아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중학교 때 교통카드 겸 체크카드를 만들어 주고 여태까지 벌써 다섯 번째 잃어버렸다. 네 번째 잃어버렸을 때 겨우 참았는데 엄마 카드인 것도 그렇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수업을 받으러 가는 아들이 이런 점에 소홀했다는 게 더 화가 났다. 그리고 점점 그 화는 내가 겪을 불편한 점들로 채워졌다.

‘내가 가장 많이 쓰는 카드고 그 카드로 계속 포인트를 적립해야 하는데 잃어버려서 어떻게 해!’

속상한 마음이 십 분쯤 흘렀다. 심호흡하고 어떻게 하면 다시 내 마음이 호수같이 될까를 생각했다. 아들을 미워하지 않을 마음들을 찾았다.

“그래, 내가 아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누가 아들을 이해해 주며, 내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만큼 아들을 사랑해 줄까?”

나는 이 마음이 드는 순간 아들을 미워하고 화냈던 마음을 밀어낼 수 있었다.


학교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나 스트레스도 받고 갈등도 많을 텐데 혹시 내가 미워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 누가 아들을 미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야! 카드는 분실신고하고 재발급받으면 되지 뭐. 백 번이고 천 번이라도 잃어버리라고 해!’


나는 이런 마음이 되니까 카드를 잃어버려 좀 번거로워질 일들이 가벼워졌다. 배포도 더 커지고 아량도 더 넓어지고, 이 마음이 되라고 아들이 오늘 카드를 또 잃어버린 것 같다.

‘아들은 학원에서 열심히 수업받고 있겠지,’


저녁 8시쯤 이른 일기를 쓰며 ’ 카드를 잃어버린 감사한 날‘이라고 제목을 쓴다. 아들이 오면 반갑게 맞이해 줘야지 하는 설렘도 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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