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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 나비 Jun 19. 2024

왼손잡이

존중


딸처럼 나도 왼손잡이다. 80년대 후반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서는 나 혼자 왼손잡이였다. 엄마가 고치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은 하셨지만 안 됐다. 엄마에게 혼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께 혼이 났었다.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것은 일언반구의 대꾸도 할 수 없이 무조건 안 되는 행동이었다. 나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눈치 보는 아이였지만 고쳐지지 않았었는데, 무서운 학교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오른손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양손잡이가 됐다. 글만 오른손으로 쓰고 다른 모든 일은 왼손을 사용한다. 젓가락질, 가위질이나 칼질, 공을 던지는 운동을 할 때도 그렇다. 
내가 어렸을 때 혼이 많이 났는데도 오른손으로 쓰도록 바꾸지 못했던 것은, 이유도 모른 채 바꾸라고 했던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해 서다.  주눅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글을 쓰도록 지도해 주신 선생님의 얼굴도, 이름도 생각이 나질 않지만 행복한 기억은 아니었기에 힘들게 오른손으로 쓰게 됐다는 건 안다. 오른손으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칼질이나 가위질은 모두 왼손인데, 글씨만 오른손으로 쓰니 말이다.


초등학교 때 기억에 남는 선생님을 떠올려 보면 나는 국어 선생님 두 분이다. 한 분은 남자 선생님이고 다른 분은 여자 선생님인데, 얼굴과 이름까지 기억난다. 선생님께서 국어 시간에 감성에 젖어 시를 읽어주실 때 나는 행복했다. 그 두 분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글 쓰기를 놓지 못하는 것 같다. 
내게 시를 읊어주시며 문학의 기쁨을 알게 해주신 선생님도 감사하지만, 사실 혼을 내며 고쳐주려고 하신 선생님도 감사하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혼나는 것에 애정이 있다는 걸 몰랐다. 아이들 키우면서 나도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 정말 위하지 않으면 못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왼손잡이 막내딸은 연필을 잡을 때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에 덮이고 글을 쓸 때 손목이 꺾이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서 낫다는 생각도 들때가 있다. 내가 글 쓰는 일 외에 왼손잡이라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오른손잡이와 밥을 먹을 때 부딪친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인과 같이 길을 걸을 때 차가 오기라도 하면 오른손잡이 그 분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서 서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남편도 딸에게 엄마 닮아서 그렇다고 핀잔했었는데, 이제는 뭐라고 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땐 왼손으로 글을 쓴다고 못마땅해했다.
“엄마가 왼손으로 쓰니까, 딸이 따라 하지!”
막내 위로 언니, 오빠가 있는데 다 오른손잡이다. 그래서 남편의 말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바꿔보려고 억지로 오른손으로 쓰게 해서 딸은 더 반항했기 때문이다. 
“왼손으로 쓰는 게 어때서!”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글을 쓸 때 신경을 쓰지 않고 쓰는 버릇도 있어서, 딸은 5학년이 될 때까지도 1학년 글씨처럼 삐뚤빼뚤하고 못 알아볼 정도로 글을 써서 마음에 걸리고 아팠다. 딸과 갈등이 생기니까 말 못 하고 혼자 가슴앓이만 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다.
언니가 미술 입시로 학원에 가서 상담받게 됐는데, 상담하는 선생님이 왼손잡이였다! 그 선생님은 왼손으로 글을 쓰는데도 잘 쓰고, 더구나 그림도 잘 그리는 것이었다!
‘미술 선생님도 왼손잡이라니!’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의 상처가 글은 오른손으로만 써야하고, 왼손잡이는 글을 잘 못 쓴다는 편견이 됐고, 딸에게도 고스란히 상처를 주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 선생님이 펜을 쥔 손을 보고 마음에 해방을 느꼈다. 그 후로 딸을 믿고 더 이상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것에 간섭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딸이 연필을 잡을 때 뭔가 불편해 보이고 손목이 꺾여 보이지만, 그 선생님처럼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릴 거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어느 날 6학년이 된 막내가 말했다.
“엄마, 나도 글씨를 잘 쓰고 싶어. 따로 연습해야 할 것 같아. 친구들 잘 쓰는 걸 보고 느꼈어!”
“그래, 이제 알았구나!”
딸은 지금도 평소에는 날림으로 글을 쓰지만 신경을 쓰면 또박또박 잘 쓴다. 그림 그리기도 좋아하고 느낌 있게 잘 그린다. 나는 딸에게 가끔 오른손으로 글을 쓰면 더 편하고 빨리 쓸 수 있어서 좋다고는 얘기하지만, 예전처럼 꼭 바꾸라고는 안 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기에....
 
나는 양손잡이라서 좋고 딸은 지금 왼손잡이라서 좋은 거다. 서로 좋아하는 걸 하고, 서로를 존중해 주는 마음이 행복이라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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