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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Jun 18. 2024

*엽아, 고마워!

친구


꿈에 대학교 때 동창이었던 *엽이가 나왔다. 나를 못 잊고 찾아와서 우리 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도와주고 있었다. 정장 차림이었으나 머리는 단발에 끝이 휘어져 올라가 있고 몸은 비쩍 말라서 볼품이 없었다. 정말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엽이는 날 만나려고 사람들한테 물어 물어서 찾았다고 했다. 그는 자꾸 나와 만날 기회를 찾기 위해 대화를 이어 나갔고, 나는 바쁘지도 않으면서 바쁘다며 피했다. 정말 본인은 신경 쓴 모습인데, 나는 그가 촌스럽게 느껴지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맘에 안 들더라. 눈치도 없는 애 같고. 무슨 미련으로 꿈에 나타났는지? 꿈에 나타난 게 악몽 같았다.


나는 그 친구를 좋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대학 시절에 내게 정성이 묻어난 편지를 줬고, 수업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미소 지으며 읽었던 것 같다. 그 친구를 좋아한 건 아니지만 그 편지를 정성껏 만든 흔적에 감동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편지를 도둑맞았는지, 내가 흘렸는지 주머니에 넣은 것 같은데 잃어버렸다. 그리고 한 번은 같이 밥 먹자고 하며 수업을 빼먹자고 했는데 경제학인 걸로 기억한다. 나도 좋아하는 수업이 아니고 그 친구가 수업 빼먹어도 차질 없게 도와주겠다고 해서 같이 밥 먹은 기억이 있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아서 실망한 기억도 있다.

 

한 가지 사건이 더 있다면 차비가 없다고 자기 집에 오라고 했던 날의 기억. 정말 차비가 없어서 나를 부르나 싶었지만 친구니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기 싫었지만 안 오면 안 될 것처럼 보채서 도와주려고 간 것이다. 
그때는 버스 차비를 종이로 된 승차권으로 냈다. 그것을 한 장 주고 나는 집으로 바로 왔다. 내 기억에 그 친구는 샤워했는지 웃옷을 벗고 있었고 머리를 털고 있었다. 나는 그 애를 보고 ‘제 왜 저래?’ 그런 생각뿐이었다. 남자로서는 1%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후로도 가깝게 다가오려는 그 친구가 부담돼서 일부러 피했다. 졸업을 하고 몇 년이 흐른 뒤 전화가 왔다. 군대에 있을 때였다. 내가 핸드폰 번호를 바꾸지 않아서 전화가 온 것이다. *엽이는 전화해서 왜 그때 얘기도 안 하고 멀어졌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너무 솔직하게 얘기했다. 
“나는 너를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너를 몇 번 만났던 거야. 네가 계속 다가와서 나는 피했고.”라고 얘기를 했다. 아니, 좀 더 심한 말을 한 것 같다. 그 친구는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 당시는 “왜 전화했어? 솔직하게 얘기해야겠다!” 그런 마음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배려하지 못했고 그 애가 눈치가 없다고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가 생각했던 추억이 나와는 전혀 다른 것뿐이었는데, 본인이 요구하는 대로 내가 들어주니까 본인을 좋아한다고 느낀 건 아닌지 싶다. 하지만 나는 친구 이상은 아닌 의리로 만났다. 좋아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내가 그 친구를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너무 미안한 마음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용서를 비는 기도를 했다.

 
그런데 또 꿈에 나타났다. 왜 그런 거지? 예전에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고 기도를 해주었는데. 알 수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직도 그 애와 내가 풀어야 하는 게 있나?
 
나는 그 애 입장을 생각해 보고 좋은 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내 삶에서 만난 남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도 생각했다. 나를 스쳤던 남자들은 나를 좋아해 주었던 사람보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에 미쳤다. 남자에 대한 배신감, 피해의식이 있었는데, *엽이와 비교를 하니까 순간  *엽이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좋아해 준 남자, 군대에서 전화해 준 남자! 이 친구는 조건 없이 날 좋아해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이를 만난 기억을 지우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 경험이 감사로 느껴졌다. 미련을 갖고 전화해 준 것도 밉지 않더라. 오히려 내가 그때 농담으로 잘 얘기했으면 좋았을걸.
 
“나 좋은 사람 생겼어. 일찍 전화해 주지!”
이렇게 선의 거짓말이라도 했으면 그 친구가 상처를 덜 받았을 텐데. 미안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과 참사랑의 마음이 내 마음을 채워주었다. 
 

고마워 *엽아! 

그리고 그때는 미안했어!

다시 만나면 좋은 친구로 지내자!


:  그 이후로는 꿈에 *엽이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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