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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Jun 18. 2024

짜장면 노래

딸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될 때(기분 맞춰 주기)

싸락눈이 풀풀 날리는 1월 중순, 모처럼 따뜻한 주말이었다.

“엄마, 짜장면 사줘―. 짜장면―.”

막내딸이 계속 짜장면 노래를 불렀다.

“집에 짜장 라면이 있는데 뭣 하러 사먹어! 라면 끓여 먹자!”

딸은 한사코 싫다며 짜장면을 사달라고 했다. 딸 위로 언니와 오빠가 있어서 점심을 한 번에 차려줘야 하는데 막내가 조르니 난감했다.

“짜장면 안 사준지 3개월이 넘었다고! 사줘, 사 주란 말이야!”

딸에게 내 말은 TV에서 듣는 정보에 불과했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얘기였다. 그러니 다음에 사주겠다는 얘기도 들릴 리 만무했다. 조르는 통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강추위에 옷을 여미듯 마음도 얼어붙어 더 움츠러들었다.

“짜장면 한 그릇이 짜장 라면 열 그릇 값인데…….”

나는 머릿속으로 안 갈 이유만 찾고 있었다. 서로 팽팽하게 다른 말만 주고받다가 나는 딸에게 가까운 실개천에 산책 가자고 했다. 딸은 주변에 떠도는 길고양이가 이 시간에 가끔 나타나는데 가서 쓰다듬어주고 싶다고 했다. 딸은 냉장고에 있는 마른멸치를 달라고 해서 조금 주었더니 물에 불려서 머리와 뼈, 똥을 떼어냈다. 키친타월로 물기를 빼고 비닐백에 소중히 담았다. 길고양이를 만나면 먹여주고 싶어서란다. 5학년인 딸은 몇 년 전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오빠가 비염이 심해서 키울 수가 없었다. 실개천에는 몇 마리 고양이가 다니는데 거의 중성화 수술이 돼있다. 동네사람들 중에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수술도 시켜주고, 겨울을 날 수 있게 장소도 마련해주고, 배가 고플까봐 물과 음식도 갖다 주는 분들이 곳곳에 있다고 들었다. 아직 점심시간이 되려면 두 시간 정도 남아있어서 우리는 서둘러 나갔다.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딸과 손을 잡고 걸으며 고양이를 찾으러 다녔다. 나도 동심으로 돌아가서 다른 생각은 제쳐두고 고양이가 어디에 숨었을까 그 생각만 했다. 개천으로 아직 녹지 않은 살얼음이 고개를 내밀고, 살얼음을 따라 드문 있는 바위 틈새로 물이 ‘콸콸’ 따뜻한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흘렀다. 마른 풀들이 사각거렸고 그 풀들 사이로 참새가 짹짹대며 모였다 날아가고 다시 옹기종기 모였다. 눈은 내리고 있지만 내 마음에 낀 살얼음도 녹고 있었다.

삼십분 동안 개천을 걸었는데 운동은 됐지만 고양이는 만날 수 없었다.

“이 멸치 어떡하지? 고양이 만나면 주고 싶었는데…….”

딸이 많이 실망한 듯 보였다.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짜장면 사달라고 조르는 딸의 마음을 몰라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도 만나지 못해서 딸이 얼마나 실망하고 허전한 마음일까.

‘기분이다! 언니, 오빠는 라면 끓여먹으라고 하지 뭐!’

나는 딸과 친구가 된 마음이었다.

“우리, 짜장면 먹으러 갈까?”

“와, 신난다!”

딸의 올라간 입 꼬리를 보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집에 전화해서 두 자녀들에게 점심은 알아서 챙겨먹으라고 얘기해줬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막내딸과 중국집에 들어갔다.

딸은 짜장면을 시켰고 나는 짬뽕을 시켰다. 중국집 계산대와 주방에 있는 분이 부부인 것 같고 두 분이 내 연배로 보였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노래가 귀를 자꾸 자극했다.

집에서는 노래보다 집안 살림과 아이들 공부하는 것에 신경이 곤두세워졌었다. 채소 값, 고기 값, 라면 값. 가계부에 식비를 적으며 신경 쓰느라 하루가 다 갔다. 요즘 가요는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클래식이나 헤비메탈 음악처럼 시끄럽게 여기기 일쑤였다. 그래서 노래방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이 중국집 왜 이렇게 정겹지!”  

나도 모르게 노래에 홀렸다.

‘비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그룹 ‘다섯손가락’의 노래가 내 귀에 확성기처럼 들렸다.

‘눈 내리고 외롭던 밤이 지나면 멀리서 들려오는 새벽종소리…….’

나는 순간, 가수 이름이 생각이 날듯 말듯 했다.

‘어, 어, 이 곡 아는데. 가수가 누구였더라? 맞아! 조. 정. 현!’

나는 중국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어느 순간 따라 부르고 있었다. 80~90년대 가요가 물밀듯이 귀에서 가슴으로 들어왔다. 가사며 가수 이름도 퍼즐같이 맞춰가며 음식을 기다리는데,

‘이 순간이 이렇게 행복할 수 가!’

중국집이 아니고 음악 카페에 온 기분이 들었다. 딸이 짜장면 사달라고 조를 때 무조건 ‘오케이’ 할 걸 그랬다. 고등학교 때 학교 옥상에서 주구장창 친구들과 가요를 불렀던 생각이 났다. 젊은 20대 때는 친구들과 노래방 가서 많이 불렀는데. 노래방 기기를 틀면 모르는 가요가 거의 없었는데…….

청소년인 두 자녀가 요즘에 뜨는 가요를 모른다고 내게 핀잔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럴 때는 세대차이도 느끼면서 주눅이 들긴 했다. 아이들 키우며 살림하면서 20년의 세월이 뚝 끊어진 것 같다. 엄마로 살면서 노래로 기쁨을 느꼈던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걸 중국집에 앉아 그 시절의 가요를 들으며 알았다. 그렇지만 이곳이 다시 뚝 끊긴 기쁨을 이어 주는 곳이기도 했다. 나도 그 때는 아이들처럼 가요 좋아하는 청소년이었다고 생각하니까 아이들의 마음을 알 것 같고, 아이들이 요즘 가요를 모른다고 해도 이제는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다. 내게는 80~90년대의 가요가 특혜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풋풋한 젊음과 낭만이 내 기억에 남아있기에.




“엄마! 짜장면, 짬뽕 나왔어!”

딸이 재촉하며 먹자고 했다. 나는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었다. 밖에 나가기 싫어서 시켜 먹던 짜장면보다도 노랫가락과 버무려 먹는 이 맛이 꿀맛이었다.

딸은 입가에 검은 국물을 묻혀가며, 혀로 입술을 핥아가며 깨끗이 그릇을 비웠다.

“엄마, 나― 짜장면 2년 동안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딸은 정말 배불러 보였다.

“정말! 그렇게 맛있었어?”

“응.”

나는 딸이 ‘후루룩 쩝쩝’ 맛있게 먹고 “싹싹” 비운 그릇을 보니 모든 미안했던 감정들도 날아갔다.   

‘한 동안 짜장면 사 달라 안하겠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어서 흡족했다.

세 아이들은 개학해서 학교에 다닌다. 꽃 피는 삼월, 나는 이렇게 오전에는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다. 나는 최근에 그 중국집에 지나칠 일이 있었는데, 딸과 같이 들었던 가요가 문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짜장면 냄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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