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딸은 흥이 많다! 흥이 줄줄 넘쳐서 내가 감당하기가 버거울 때가 많다. 6학년이면 잠잠해질 나이 같은데 그건 내 착각인 것 같다.
심심한 시간이 되면 내 볼을 자기 친구처럼 꼬집고 흔들어 댄다. 딸은 아주 재밌어한다.
‘나는 이걸 대주고 있어야 해, 뿌리쳐야 해!’하며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딸이 뺐던 양 손가락으로 다시 내 볼에 몇 차례 조물조물해서 화가 나기도 한다.
“그만 좀 해!”
그러면 딸은 더 꼬집으며 귀엽다고 한다. 내가 엄마인지 딸의 딸인지, 딸의 태도를 보면 내가 친구이자 딸 같다. 평소에 딸이 학원에 다녀와서 숙제하고 두세 시간 정도는 핸드폰과 노트북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데 그때는 잠잠하다가. 내가 밤 10시가 넘어 보고 있는 걸 걷어가려고 하면 딸은 ‘보리·쌀’ 놀이나 ‘가위바위보’ 삼세판을 해서 엄마가 이기면 준다고 늘 장난을 친다. 나는 딸이 뜸을 들이니까 오히려 얄밉고 지치는데 딸은 엄마가 잘 못 받는 모습에 키득키득 웃으며 재미있어한다.
“그냥 줘. 시간 됐잖아!”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딸의 장난치는 행동을 마냥 받아주면 친구나 친한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지 않을까? 내가 좋고 재밌는 행동이 상대도 그럴 거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서 진지하게 한번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장난치는 것도 한때겠지 싶어서 말아버린다. 내가 딸의 흥에 맞춰주지 못해서 더 힘들게 느끼지 않았나 싶어서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한 사건이 있는데 오늘 동네 병원에 갔을 때 느꼈던 점이다. 만 12세 안에 예방 접종을 하면 무료라고 해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예방 접종을 맞추기 위해 새해가 며칠 남지 않은 오늘, 부랴부랴 딸을 데리고 갔다. 딸은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주면 가겠다고 조건을 달아서 알겠다고 하고 데려간 길이었다.
대기 번호 8번, 두 의사가 진료를 해주는데 대기가 적은 곳에 접수해서 금방 진료받을 거로 생각했다. 상대 쪽은 두 배가 넘는 대기 번호가 금세 줄어들고 우리 쪽은 줄지 않아서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야 했다. 딸과 나는 병원 안이 비좁아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았는데 딸이 또 심심한지 내 옆에 바싹 붙어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방해했다.
손가락으로 보고 있는 핸드폰 액정 위를 휘휘 젓는 것이었다. 그것도 여러 차례나…. 나도 그런 딸을 훼방 놓으려고 똑같이 해봤다. 딸은 친구한테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는데 내가 훼방을 놓는데도 문자를 잘도 보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액정 위를 난타질해도 딸은 아랑곳하지 않고 타자를 했고 화도 내지 않더라. 그래도 나는 좀 고소했다.
“이런 기분에서 장난치는 거구나!”
요리조리 피하는 상대가 재밌어서 계속 건드리는 스릴. 딸의 마음을 조금은 알겠더라. 그리고 나도 딸처럼 딸이 간지럼을 태우면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간지럼도 태워주고, 딸이 ‘보리쌀’ 놀이나 ‘가위바위보’로 물건을 줄까 말까 장난을 쳐도 나도 같이 장단을 맞춰주면서 놀아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예방 접종을 맞기 위해 기다리는 의자에서 내게 체중을 실어 기대더니 내 무릎 위에 누웠다. 어릴 때 업어주고 안아주었던 귀엽고 가벼운 무게가 아니라 내 말에 “아닌데, 내 말이 맞아!”하고 우기는 힘이 더해져 역기 같이 누르는 무게 같다.
나는 이 무게를 안으려면 몸보다는 마음의 무게를 낮춰야겠다고 느꼈다. 내가 삼십대 엄마일 때 큰딸을 한쪽 손에 잡고 다른 손은 장바구니를 들고 등에는 아들을 포대기로 업고 동네 시장에 장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불가능할 것 같던 걸 감당했는데, 막내가 내 무릎에 누웠다고 힘겨워하네! 물론 그때와 지금의 몸은 다르지만 몸이 힘겹다고 마음마저 그래선 안 되지!
막내 위로 고등학생인 자녀를 생각하면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거의 없고,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장난치는 게 상상이 안 된다. 그래도 막내가 아직은 엄마를 친구같이 여겨서 볼도 꼬집어 주고 아이돌 춤도 추며 재롱을 피운다. 언니와 오빠가 입시로 힘들어 내가 말 붙이기도 힘들 때 설거지도 도와주고 다시 멸치도 다듬어 주고 효녀가 따로 없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인데, 내게 좀 과한 장난을 치더라도 예쁘게 봐주며 장단을 맞춰줘야겠다고 느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