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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만 아이스크림

모든 게 예뻐 보여!

중학생이 된 막내는 친구 따라 얼굴에 바르는 쿠션을 하나 사서 몰래 바르고 다니더니, 어제는 화장대에 앉아 눈두덩이에 바르는 쉐이딩도 꺼내 바르며 놀았다. 대학교 때 꾸며도 되는데 벌써 화장을 하냐고 잔소리해도 바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도 엄마 옷을 죄다 들춰내서 이것저것 입어 보며 흐뭇해하던 기억이 가물가물하게나마 떠올라서 딸을 말릴 순 없다. 내가 그때 엄마 옷들을 개서 옷장 안에 넣어놨을까?


당연히 어질러만 놓고 안 치웠을 게 뻔하다. 그래서 엄마한테 혼이 났을 것 같다. 친정엄마는 방을 치우고도 성에 안 차서 바닥을 '퐁퐁'으로 닦을 정도로 아프지 않으셨을 때는 정말 깔끔하게 살림하셨다고 언니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엄만데 내가 어질러 놓으면 얼마나 화내셨을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내가 엄마를 마귀할멈으로 기억하는 건 그 때문 인지도 모르겠다.




아침을 먹이고 딸을 학교 보낸 후 화장대를 치우는데, 클렌징 한 솜이 마음에 걸렸다.

'이건 치우고 자야 되는 거 아니야!'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만 열중해서 치우는 걸 안 하는 딸이 밉기도 하지만, 내 어릴 때 기억도 나고, 내가 치워줄 수 있는 몸마음이 되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럴 수 있지 머.'

이런 마음으로 빨리 넘길 수 있었던 건 딸이 초등학교 때 일어났던 '아이스크림 사건' 때문이다.


그날 오후에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나는 식탁에 반쯤 먹다 놓은 콘 아이스크림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식탁 유리 아래로 '똑 똑' 녹아 떨어지고 있었다. 막내는 친구 만나러 나간다고 문자를 남긴 상태였다. 나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딸이 오면 어떻게 혼낼까를 상상했다. 생각할수록 더 화가 났다! 이를 어쩌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닫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딸에게 혼을 내면 돌아오는 건 서로의 불쾌한 감정일 뿐 해결되는 일이 없다는 걸 그동안 아이들 키우며 노련하게 알고 있었다. 어릴 때 내가 엄마한테 혼이 났던 걸 생각하면서 딸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얼마나 친구 만나는 게 급했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내팽개치고서 나갔을까! 얼마나 급했으면....'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딸이 흘린 아이스크림이 예술작품처럼 예뻐 보였다. 똑똑 떨어지는 액체는 음악이 됐다.

징그럽게 미운, 녹은 아이스크림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내가 치우면 되지, 여태까지 그랬는 걸!'




집으로 돌아온 딸에게 차분하게 친구 만났던 얘기를 물어봤고, 먹다 만 아이스크림을 놓고 간 얘기도 했다. 딸은 미안해했고 일본에서 3년 만에 연락 온 친구를 급하게 만나러 가느라 아이스크림을 식탁에 놓고 간 줄도 몰랐다고 했다.

'그렇지, 다 이유가 있었어.'


나는 그 이유보다 딸이 아이스크림을 빨면서 맛있어했을 상상과 딸이 먹은 아이스크림 흔적도 예뻐 보였던 그 순간의 기쁨이 마음에 남아있다. 그 '아이스크림 사건'으로 아이들이 바닥에 흘리고 다니는 옷과 양말도 군소리 잘 안 하고 주워서 옷바구니에 담는다. 여느 엄마들이 늘 해왔고 하고 있는 대로 말이다.


'딸도 학교, 학원에 다녀오느라 늘 힘들 텐데....'

이런 마음이면 웬만한 건 다 넘어갈 수 있다! 예쁘게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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