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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의 끝말잇기

팽팽한 대화

밤 11시가 넘었는데, 막내가 느닷없이 끝말잇기를 하자고 했다. 나는 재우고 싶었지만 딸을 생각해서 그러자고 했다.

딸이 먼저 단어를 댔다.

“이사”

“사람”

"람?"

"아하하하― ‘람’으로 시작되는 말 모르겠지?"


나는 딸을 이기니 소극적이던 마음의 끈이 ‘톡’ 풀렸다! 웃음에 영혼이 맑아진 기분이 들었다.

“다시 해!”

딸이 말했다.

“그래, 불러 봐!”

“망사!”

“사람! 으하하하―”

나는 재미를 붙이고 있었고 딸은 이기고 싶었다.


“다시!”

“그래, 불러 봐!”

딸은 새로운 단어를 댔다.

“다람쥐”

“쥐새끼”

“두 단어는 안 돼!”

딸이 말했다.

“알았어! 쥐포.”

“포섭”

“섭외”

“외박”

“박자”

“그게 뭐야?”

딸이 갑자기 박자가 뭔지 묻는다.

“거, 박자 맞추라고 하잖아!”

“아, 그 박자! 그럼 나는 자립심.”

“심드렁”

“에반데!”

딸이 의심의 눈초리로 말했다.


“아하하하―”

“그냥 넘어갈게. 렁마.”

“넝마 아니야!”

"렁마도 있을걸?"

“포기해!”

내가 말했다. 나도 슬슬 게임을 끝내고 싶었다.

“그렇다면 심드렁도 안 돼요!”

“그럼, 렁트멍!”

“그게 뭐야?”

“심드렁이랑 비슷한 말이야! 기다려 봐.”


딸은 인터넷을 검색했다.

“‘느리게 천천히’라는 뜻 이래.”

“너 인터넷 보고 있었지?”

“뜻을 알기 위해 찾아보는 건 돼!”

“멍멍”

나는 웃으며 말했다.

“되겠어?”

딸이 헛웃음을 지으면 말했다.


“렁트멍은 되니? 어학사전에 없는데?”

“프랑스 말이야! 그럼 나, 아까 렁마할 게. 렁마는 되는 거야. ㄹ을 ㄴ으로 바꿔도 된다고. 그걸 몰라?”

"알았어. 봐준다!"

딸은 포기를 안 한다.

.....


끝말잇기는 계속 이어졌다. 내가 지지 않고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후로 5분간 계속 이어진 끝말잇기는 딸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딸은 엄마가 하기 싫어서 기권하는 거라고 했다. 엄마 마음으로는 딸이 자기 싫어서 계속 끝말잇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딸과 팽팽한 대화는 불을 끄며 일단락 났다.



이튿날 딸에게 물었다.
"왜 '사'자를 자꾸 말한 거야?"
딸은 '사'자로 끝나는 말을 자꾸 한 게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라고.
내가 "사랑해!" 하면,
딸이 "해 질 녘!"
이라 말하고 자려했단다.
에고, 엄마가 딸의 마음을 몰라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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