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여섯 시,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했다. 막내는 X-ray에 이어 CT 촬영까지 받았다.
사건의 시작은 새벽 세 시쯤, 잠들기 전 먹은 약이 목에 걸린 것이었다. 두 시간 가까이 내려가지 않았고, 그게 탈이었다. 가까운 이비인후과나 내시경 검사를 받을 병원을 찾았지만, 그 시간엔 문 연 곳이 없었다. 119 대원은 여러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세브란스 소아과에서 받아준다는 말에 우리는 서둘러 구급차에 올랐다.
사실 나는 119를 부를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내는 너무 걱정스러워했다.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고, 약이 목에 달라붙어 박하사탕처럼 뜨겁고 싸한 느낌이 계속 난다고 했다. 캑캑거리며 괴로워하면서도, 119 대원과 병원과의 통화에는 또렷이 대답했다.
아이들 일로 구급차를 탄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한 번은 아들이 유아 시절 열사병으로 실려갔고, 이번엔 사춘기 막내딸 때문이었다.
구급차 안에서 나는 멀미가 났지만, 딸이 힘든데 내가 힘들다는 건 사치 같았다.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자 증상이 조금 나아졌다. 운전석 옆 여성 대원의 눈이 충혈된 것을 보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뒤에 함께 탄 남성 대원은 딸의 산소포화도와 혈압을 체크했다. 그 후로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조용히 도착만을 기다렸다.
나는 기도하며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이가 아프면 왜 엄마는 죄인이 될까?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막내에게 소홀했던 일들, 내가 놓친 순간들이 떠올랐다.
엑스레이에서 기도 근처에 이물질이 보였고, 의사는 더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CT 촬영을 권했다.
“괜찮습니다. 약이 기도 근처에 걸려 있는 건 아니고, 이미 잘 내려간 것 같습니다. 따님이 조금 예민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의사의 말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진료비는 20만 원.
그래도 마음속엔 ‘액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겪게 될 일을 미리 지나간 셈이라 여겼다.
“막내야, 네가 예민하게 느낀 것 같아.”
“그런가 봐. 예전엔 약 먹을 때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다음엔 이런 일로 병원에 가지 말자.”
“근데, 만약 진짜 목에 걸린 거면 어떡해?”
“그땐 숨이 막히고 너무 힘들 거야. 그런 상황이면 당연히 엄마가 119 부를게.”
“응, 알았어.”
딸은 평소보다 달랐던 몸의 반응에 예민했고, 그걸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119에 전화했을 때, 나는 말리지 않았다.
이번 일을 통해 딸이 스스로의 예민함을 조금씩 다스리게 될 거라고 믿었다.
다행히 구급차를 부른 일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20만 원의 진료비가 결코 아깝지 않았다.
그보다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딸도 느꼈을 것이다.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그리고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을.
새벽마다 “일찍 자라”는 말이 통하지 않았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바뀌길 바란다.
사춘기 막내는 직접 체험해야 깨닫는 아이다.
오늘, 딸은 자신이 ‘조금 예민했다’는 걸 인정했다. 그게 큰 변화였다.
“엄마가 바뀌어야, 내가 바뀌지!”
딸과 갈등이 생길 때면 종종 듣는 말이다.
그 말엔 나도 변하기 어렵다는 걸 꼬집는 뜻이 숨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좌우명처럼 새기며 나를 돌아본다.
나는 내가 겪은 어려움을 아이들이 겪지 않길 바라며 막으려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는 뭐든 막는다”라고 불평한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밤 열 시 이후 핸드폰을 걷던 것도, 이제는 딸 스스로 조절하게 맡겼다.
아직 새벽에 자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지만, 대신 딸의 마음엔 여유가 생겼다.
콧노래가 들릴 때면 그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 여덟 시에 고구마와 우유를 먹고 낮잠을 잔 딸은 오후 세 시쯤 일어나 점심을 먹고 다시 자더니, 여섯 시쯤 일어났다.
“엄마, 나 더 자면 내일 학교 가야 하는데 지장 클 것 같아.”
“그래, 그렇겠지.”
“나 오늘은 새벽 두 시 안엔 자야겠어.”
“그래, 그게 좋겠다.”
나는 내 경험이 아이에게 그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저 딸의 말에 공감하며 대답했다.
하루아침에 습관은 바뀌지 않겠지만, 이번 일을 통해 딸은 자신을 돌아보고, 생활 리듬도 조금씩 조절하게 될 것이다.
여덟 달간의 근무를 마치고 전업주부로 돌아온 지금, 때로는 다시 일하고 싶지만 아이들이 아직은 나를 더 필요로 한다는 걸 안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짜증과 투정을 받아주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아빠가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엄마에게 기대는 아이들.
그래서 나는 ‘엄마’라는 이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오늘 큰일 없이 하루를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병원에 딸을 인계하고 돌아간 119 대원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엄마는 늘 그래. 변하지 않아!”
최근 또 갈등이 있었을 때, 딸이 내게 한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핸드폰을 걷어 가지 않고 딸을 믿어 주었다.
그게 내가 변한 증거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딸이 문자를 보냈다.
‘나도 노력해 볼 거야. 근데 조금은 거리를 두고 싶어.’
나는 이미 거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딸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더 존중하고, 더 믿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딸과 엄마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10월 15일 딸내미 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