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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 나비 Jun 30. 2024

솥 밥에 숭늉

존중해 주기

*마트 상품권이 있어서, 주말에 그곳에서 저녁을 먹자고 아이들과 약속했다. 마트는 버스를 타고 30분은 족히 가야 하는 곳이었다. 버스 안에서 나와 큰딸은 앞 좌석에 앉았는데, 막내가 언니 옆에 서있었다. 나는 막내에게 내 앞에 자리가 있으니 앉으라고 했다. 막내는 창피한지 아니면 앉기 싫은지, 한 번 더 불러도 오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핸드폰에 알람이 뜬 브런치 작가의 글을 읽고 있었다.

마트에 도착해서 모자와 신발을 구경하고 8층 식당가로 갔다. 음식점이 3곳 있었는데 한 곳만 상품권을 받고 나머지는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았다. 우리는 모두 상품권을 받는 그곳에서 주문했다. 그곳은 주메뉴에 밥으로 솥 밥이 나오는 곳이었다. 큰딸은 제육볶음, 막내는 설렁탕, 나는 해물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제육볶음 솥밥


솥 밥의 특성상 열기가 뭉친 바닥과 닿는 쌀은 눌어붙기 마련인데, 나는 조금이라도 덜 눌어붙기를 바라며 밥을 최대한 떠서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음식점의 간판 근처로 가서 포트를 발견하고 뜨거운 물을 담고 있었다. 언제 나왔는지 주방에 있던 아저씨가 내가 따르고 있는 포트 안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텐데….’

나는 앞서 물을 따라간 사람을 보고 눈치껏 따르고 있었는데 신경이 쓰였다.

“1/3만 따르세요!”

나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두 사람이 필요해서요.”

“그러시군요!”

나는 아저씨가 답하고 떠나는 것을 느끼며 포트에 물을 반 정도 채워서 아이들이 있는 식탁으로 가져갔다.




솥뚜껑을 열고 나는 누룽지에 따뜻한 물을 자연스레 채웠다. 보드라운 누룽지와 숭늉을 생각하며 그릇에 담긴 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두 딸의 솥 안에 자꾸 눈이 쏠렸다. 아까 그 아저씨가 보는 그것처럼 말이다. 쌀밥이 더 누룽지가 돼서 떠먹는 밥이 적어질 텐데, 누룽지가 탈 텐데, 나는 빨리 먹고 아이들은 늦게 가게 될 텐데, 미리 물을 채워 넣어야 하는 거 아니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입 밖으로 터졌다.

“엄마처럼 솥에 있는 밥을 다 푸고 그 안에 물을 채워 넣어. 그리고 밥을 먹는 거야.”

딸들은 대꾸도 하지 않고 솥 안에 타들어 가는 밥을 연신 퍼서 먹고 있었다. 나는 한 번 더 얘기했는데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속이 조금 탔지만 ‘딸들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하고 나는 또 말하고 싶은 생각을 접고 솥뚜껑을 열었다. 숭늉 냄새가 확 올라왔다. 숭늉 속에 감춰진 누룽지를 긁고 휘휘 저었다. 뿌예서 잘 보이지 않는 누룽지를 감각으로 숟가락에 모아서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아이들은 누룽지를 힘겹게 떼서 먹고 있었다. 그래도 불만은 없어 보였다. 나는 솥을 긁고 있는 큰딸한테 말했다.

“엄마는 미리 물을 넣어 놔서 이렇게 부드럽게 누룽지를 먹어. 맛있겠지!”

나는 답답한 마음도 있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말했는데 큰딸의 답은 뜻밖이었다.

“나는 딱딱하게 먹는 거 좋아해!”

‘그래서 내가 얘기해도 듣지 않은 거였구나!’

딸은 솥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뚜껑을 닫지 않고 숟가락으로 거친 누룽지를 떼어냈다. 딸의 솥 안에 있는 누룽지는 각이 져 있었다. 막내도 언니와 같은 방법으로 누룽지를 떼어냈다.

‘그래 자기가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되지!’     




나는 딸들이 솥 밥을 먹는 스타일도 나와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리고 누룽지를 떠 입안에 넣으면서 자꾸만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아이들과 외식할 수 있지만 친정엄마는 달랐다. 나는 엄마와 외식한 기억이 없다는 것과 맛있는 걸 마음대로 사드시지 못한 친정엄마가 자꾸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나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엄마가 좋아하는 빵이 단팥빵이었다는 걸 알았을 정도였으니….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몰랐던 것 같다. 그만큼 엄마의 병은 깊었다. 엄마는 40년을 견디느라 바빴고 엄마와 소통 창구는 없었던 것 같다. 어찌어찌 어린 시절이 그래도 흘러갔다.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직장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정신없이 사는 동안 엄마와의 기억도 더 희미해진 듯했다. 그런데, 솥 밥을 먹으며 3년 전에 돌아가신 엄마가 떠오른 것이다.

엄마가 지금의 내가 돼서 아이들과 밥을 먹고 있다면 어땠을까? 딸들이 쌀밥을 그릇에 퍼내고 뜨거운 물을 솥 안에 넣을 때까지 안심 못 하고 속 끓이며 딸에게 얘기했을 것 같다. 그런 어머니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어린 기억엔 상처도 많았지만 내가 엄마가 돼서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모습에서 엄마를 발견했을 때 깜짝깜짝 놀란 적도 있다.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를 느끼고 나서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친정엄마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일 뿐 본심은 미워서 그랬던 게 아니라는 걸 어느 순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자녀들에 대해 잘 몰라서 일방적인 요구로 보였다고 느꼈다. 엄마가 환경 때문에 화가 많이 났을 것 같고 그걸 풀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셨으리라 생각한다. 엄마의 말속에서 화를 걸러내고 몰라서 그랬다는 걸 걸러내면 사랑밖에 남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엄마에 대한 원망을 걷어내고 사랑의 눈으로 보면 사랑이 보였다.



나는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힘들었던 점을 아이들에게는 대물림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오늘 아이들과 식사를 하면서도 두 번 이상은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아이들이 듣지 않는 얘기는 말해도 소용이 없고, 좋아하지 않는 얘기이고, 갈등만 생기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나는 다르다는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 마음을 나는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과 존중 속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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