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둘이 다른 줄 알았다. 남편과 나도 그렇다. 딸이 물고 늘어질 때 남편 닮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도 그런 걸.
내가 오리발을 간절히 찾는 것처럼 막내도 마라탕 먹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똑같네!"
한 달 전쯤 딸이 마라탕이 먹고 싶다며 시위를 했다. 딸은 한 달에 한 번 마라탕 먹을 수 있는 제한을 깨려고 했다.
밤 10시에 시작된 딱따구리 같은 소리가, 12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러다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아!'
나는 딸, 딱따구리와 친구가 됐다.
'너 돈 있잖아, 네 돈으로 사 먹어!'
'너 돈 있잖아, 네 돈으로 사 먹어!'
'너 돈 있잖아, 네 돈으로 사 먹어!'
.....
입이 아팠다. 딸은 마라탕이 간절한지 입이 아픈 줄 몰랐다.
사실 너무 맵짠 음식이라 아이들에게 자주 사 주진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먹기로 약속을 했는데, 딸이 어기고 그것도 밤에 재촉하니 난감하고 미칠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나중에 얘기하자, 일단은 자! 열 시 반에는 자야지.'
"마라탕 먹고 싶어...."
나는 한 발 물러나며 말했다.
"어제부터 속이 안 좋았잖아! 다 나으면 그때 사줄게."
"마라탕 먹고 싶어...."
딸은 듣는 귀가 닫히고 일방적인 입만 열렸다. 딱따구리이면서 앵무새 같았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열 두시 반이었다. 한 손에는 재활용 음식물쓰레기봉투를 들고... 갈 때가 어디 있나? 겸사겸사 나간 것이었다.
이십 분쯤 머리를 식히고 들어갔다. 딸은 안 자고 있었다. 나도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고 딸도 앵무새 같은 기계음을 그친 상태였다.
"엄마, 그렇게 나가면 어떻게?"
"그 자리에 있으면 해결되니? 서로 다른 말만 하는데!"
"그래도 나는 해결돼야 된다고, 아니면 잠 못 자!"
나는 화를 참고 딸 얘기를 들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딸이 빨리 자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10시 반 안에 자는 건 약속이야, 그런데 너는 지키지 않고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면서 우겼잖아. 그런데 어떻게 대화가 되니? 그리고 엄마가 속이 다 좋아지면 마라탕 조만간 사준다고 얘기했는데 듣지도 않았잖니!"
"속 괜찮다고 얘기했는데, 그래서 내일 사주라고 말했다고!"
그래?
나는 이미 노이로제에 걸려 있어서 딸이 마라탕 먹고 싶다는 말만 기억하게 돼버린 거다. 계속 반복된 말에 엄마 얘길 듣고 답한 말도 딸의 말 중에 있었다는 걸. 그것도 모르고 화가 나서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나갔던 거다.
"미안, 엄마가 네 말을 잘 못 들었어."
"나도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약속도 어기고 똑같은 말만 반복해서 미안해. 너무 마라탕이 먹고 싶어서 그만."
"알면 됐어."
"엄마도 무시하지 않고 네 말을 잘 들어 볼게. 이제 자자!"
이렇게 모녀의 대화는 해피앤딩으로 끝났다. 결국 딸에게 마라탕을 한 번 더 사주기로 하고 끝이 났다. 그렇게 먹고 싶어 하는데 한 번쯤은 더 사줄 수 있지 않을까? 약속은 있지만 가끔 융통성이란 보너스도 있으니....
나는 딸과 갈등이 생기면 피하고 나중에 얘기하자는 타입인데, 딸은 그냥 넘어가면 계속 생각나는 타입이라 딸에 맞춰줘야 된다는 걸 느꼈다. 잠을 못 잘 정도인데, 그리고 엄마가 맞춰주지 않으면 누가 맞춰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여러 얼굴을 가진 가정의 상담자, 중재자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