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말 텃밭에서 있었던 일이다. 구청에서 분양받은 텃밭은 화학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암암리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벌레들이 사용하지 않는 텃밭으로 몰려가서 피해를 줬다. 내 텃밭도 예외가 아니어서 쑥갓과 상추 씨앗을 심어놓았는데 몇 개의 싹 외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나온 싹마저도 곤충들이 다 갉아먹어서 시들어지더니 사라졌다. 옆 텃밭 아주머니는 땅강아지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 곤충뿐 아니라 배추흰나비 애벌레, 진드기, 노린재…. 형형색색의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곤충들이 보였다 숨기를 반복하며 파리 떼같이 몰려다녔다. 나는 씨앗으로 심는 건 포기하고 기존에 키우던 고구마와 고추, 콜라비라도 잘 키우자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봄부터 키워서 잘 걷어 먹었던 아욱들이 노란 곰팡이 같은 것이 끼어서 뿌리째 뽑고, 상추도 웃자라 뽑고,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남은 잔여물도 모이니 한 아름 되었다. 이곳에서 잔여물은 지정 장소에 버리게 되어 있다. 내 텃밭에서 잔여물을 안고 지정 장소까지 가려면 아파트 계단을 내려와 놀이터 한 바퀴를 도는 느낌인데 귀찮기도 하지만 뜨거운 햇볕을 끌고 가는 기분에 선뜻 나서긴 힘들었지만, 깨끗이 치운 텃밭이 내 얼굴이라는 생각에 힘을 내서 그곳까지 버리고 왔다.
다른 텃밭 여기저기서도 잔여물을 버리느라 한창이었다. 그런데 눈엣가시 같은 것이 밟혔다.
내 텃밭 위 두둑에 잔뜩 잔여물을 놓고 치우지 않는 분이 걸렸기 때문이다. 누군지 모르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애가 타기 시작했다.
‘마음만 먹으면 버리러 갈 수 있는데 왜 저렇게 몇 날 며칠을 두고 있어? 양심을 어디 두고 왔나!’
머릿속에서 욕이 나왔다가 입에서 멈췄다.
‘나보고 치우라는 거야! 내가 치워주나 봐라!’
이런 마음이 드니까 더 잔여물이 눈에 걸리고 집에 와도 그 생각으로 편치 않았다. 나는 행복텃밭 카톡방에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이곳에 잔여물 놓아둔 분은 치워주세요!”
아무도 내가 그랬다, 미안하고 당장 치우겠다고 하는 분은 없었고, 공감 댓글만 올라왔다. 내 생각에는 바로 위에 있는 텃밭 주인인 건장한 아저씨가 치우지 않는 것 같은데, 무작정 의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에 타들어 가는 속은 20일이 훌쩍 지났다. 잔여물은 푸른빛에서 누런 지푸라기로 변해있었다. 이곳 텃밭을 관리하는 스태프분들도 잡초는 기계로 쳐서 깔끔하게 뽑는데, 잔여물은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바꿔 먹기로 했다. 도저히 마음을 식히지 않으면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 내가 치워준다!’
집에서 아이들이 학교 다녀와서 그대로 벗어 논 옷이며 여기저기 던져 논 양말도 주섬주섬 집어서 바구니에 넣어놓는데, 그 일은 매일 하잖아, 이 잔여물 버리는 거 못 하겠어!
이런 마음이 드니까, 잔여물이 더럽지도 지정 장소까지 가지고 가는 것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맨손으로 그 잔여물을 인형 다루듯이 기쁘게 가져가 그곳에 버렸다. 속이 후련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었고, 나도 치울 수 있는 마음이 들기까지시간이 필요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무 한 그루 같이 커 보이던 잔여물도 20일이 지나서는 풀 한 포기로 보인 것처럼.
집에서 아이들 키우며 늘 해오던 줍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밖에서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그분이 잔여물을 잔뜩 쌓아놓지 않았다면 겪지 못할 경험이었다.
나는 잔여물을 버린 분이 누구였다는 걸 알았지만 과거에 대한 것은 얘기하지 않았다. 그분이 다시 잔여물을 두둑에 쌓아놓았을 때 한 번 얘기는 했다. 그분이 미안하다며 바로 치우셨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나와 그분의 텃밭 주변은 깨끗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