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에 있었던 일이다.
"엄마!"
"왜!"
내가 약간 화난 톤이라는 걸 느끼며 아들한테 실수했다는 걸 직감했다. 그런 말이 불쑥 왜 나왔는지 처음엔 나도 몰랐다.
"왜 화났어?"
아들은 기분이 상해있었다. 이렇게 톤에 민감하다니!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들은 예비 고3으로 이번 달부터 입시로 연기학원에 다닌다. 관심 있었던 학원에 다니니까 나에게 안 하던 말이 늘었다. 영수학원에 다닐 때와는 사뭇 달랐고 낯설어서 적응이 안 된 것 같다.
나는 아들이 화났다고 묻는 모습에서 갑자기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뭔가 틀렸다고 가르쳐주려는 말투.
“그게 아니고.”, “하지 마라!”….
친정엄마는 우리 세 자매가 결혼해서 자녀가 있는데도 습관적으로 하시는 말투가 있어서, 바꾸시라고 딸들이 자주 말하곤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그게 안 된다!"라고 답답함에 가슴을 친 기억이 난다. 뭔가 자신의 기준에서 아니면 아닌 거니까, 가족에 그런 말투가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쯤부터 아프셨다.
제 작년에 엄마는 7O대 후반의 나이에 오랜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40년 가까이 병마와 싸우면서 힘들고 답답한 몸 마음은 화가 많았을 것 같다.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데 몸은 말을 안 듣고. 돌아가시기 2년 전에는 큰 수술을 받으시고 몸져누우셔서 밥 먹는 것, 대소변까지도 친정 아빠의 손을 빌리셔야 했다.
30대 후반부터 앓으셨으니, 자식의 졸업과 입학에 가고 싶은 마음도 마음속에서 멈추셨을 것이다. 엄마는 진통제로 사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래서 뼈가 약해 자주 다쳐서 수술을 여러 차례 받으셨다. 그래도 몸이 좀 견딜만하면 가족의 만류에도 엄마는 집안 살림을 하고 싶어 하셨다. 반찬을 만들어 주시고 우리가 맛있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좋아하셨다.
나는 엄마가 결혼식 때 못 오신 것보다 엄마와 쇼핑 한 번 가보지 못하고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그런지, 생선 뼈를 발라주시며 남편과 자식 먼저 챙기고 스스로는 안 먹어도 괜찮다고 하시는 분이었다.
나도 자녀을 키우면서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는데, 엄마로서 참고 가족을 품어야 하는 무게를 알게 된 것이다. 자식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해도 부모는 자식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몸이 아팠던 친정엄마는 해주고 싶은 걸 못 해주고, 하고 싶은 것도 못 하면서도 남편과 자녀를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 눈물 많이 흘렸을 것 같다. 그래서 은연중에 힘든 마음이 말투에 묻어 나왔으리라.
엄마의 마음을 어린 나로서는 위로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나도 자식들에게 위로받을 수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반대로 나도 엄마가 살아계실 때 "엄마는 그게 왜 안 되지? 바꾸라고 했는데!"라고 생각했던 말이 아들도 나에게 똑같이 하는 게 아닌가!
"엄마, 예쁘게 좀 말해요!"
친정엄마가 다정하게 자식들에게 얘기했던 날보다, 화난 말투였다는 걸 더 기억하는 건 나도 아들과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왜 화났어?"
나는 아들이 한 말을 되짚어 보았다. 내가 집안일로 바쁘거나 주방에서 설거지나 식사 준비할 때 도와주지 않는데 자꾸 얼씬대는 게 신경이 쓰이고, 그러다 아들이 모르고 등을 치고 가기라도 하면 많이 예민해지던 순간. 나는 아들을 불편하게 생각했다는 걸 알았다.
살림은 안 하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일이고,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코로나에 걸려서 아플 때도 이틀은 방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있었지만, 삼 일째 되던 날은 아이들과 마주치지 않으면서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끼고 일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동굴 같은 공간을 늘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 밥 언제 돼? 나 급한데!”
“엄마, 난 이 음식 싫어! 다른 거 없어?"
"나, 이거 안 먹어!”
"엄마, 안경 어딨 어?"
....
라는 아이들의 말에도 신경이 곤두세워졌었다.
마음이 항상 긴장 상태여서 아들에게 불쑥 "왜!"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 같다. 아들은 용돈이 필요하거나 뭔가 요구할 때 나를 부르지 평소에는 찾지 않는다는 고정관념도 있었고 사춘기인 고3, 고2, 6학년 아이들과 소통이 잘 안 되는 답답함에 나도 모르게 그런 톤이 습관처럼 나왔나 보다. 그래도 아들의 말에 순간 "아차!" 싶었다.
아들이 귀신같이 알고 화를 왜 내냐고 했을 때 나는 "나, 화 안 냈는데!"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정곡을 찔린 거다. 하지만 내가 아들 말에 부정한 것은 화낼 상황도 아닌데 그런 말투가 나온 게 신경을 못 쓴 거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아들도 이 정도는 넘어가 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로 께름칙했지만, 이 일은 큰 갈등이 생기지 않고 가볍게 넘어갔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다음 날, 나는 아침을 먹으라고 아들을 깨웠다.
"알아서 일어난다고요!"
아들이 두세 번 말해도 안 깨니 일어나라고 한 말인데, 아들은 어제 내가 한 말보다 더 화난 말투로 얘기했다.
나는 속으로 '알람을 맞춰 놓지, 이렇게 화낼 거면서. 엄마한테 화내는 말투 쓰지 말라고 하고선 나한테 그러네! 어이구, 맨날 엄마가 깨워야 해! 밤에 일찍 자던가!'
라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왔지만, 나는 이런 말을 누르며 말했다.
"너 화난 말투야. 예전에 엄마가 빙 둘러 얘기하지 말고 바로 일어나라고 말하면 된다고 했잖아! 그러면 일어난다고."
나는 아들이 했던 말을 상기시켜 줬다. 예전엔 "7시 20분이야! 일어나야 하지 않니? 학교 안 가는 날이야?"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말하면 둘러서 얘기한다고 아들이 싫어했었다.
아들은 짜증을 내며 일어났고, 밥 먹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아들이 학교에 가는 도중에 문자를 줬다.
"엄마, 아까 짜증 내서 미안해요."
나는 아들의 문자가 정말 고마웠다. 여태껏 한 번도 이런 얘기 안 해줬는데, 아들의 사과를 받으니 서운했던 감정이 녹는 것 같았다.
‘아들이 학교 가는 중에 뭔가 깨달은 것 같아!’
아들은 자기 관점에서만 생각한다고 믿었는데, 내 마음도 읽어주었다는 생각에 기뻤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한 뼘 더 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들의 사과에 답장했다.
“그래, 얘기해 줘서 고마워.”
나는 오늘도 자정쯤에 학원에서 오는 아들을 기다린다. 아이들이 모두 각자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면, 어제와 오늘의 평범한 일상이 감사다. 서로 오해와 갈등이 있어도 그것을 풀어낼 수 있는 사랑과 지혜가 있으니 괜찮다. 그리고 엄마가 된 내가 친정엄마를 가슴에서 느껴본다.
'엄마가 존재감을 잃지 않으시려고 아프시면서도 살림을 하셨다는 걸 알았어요.'
'엄마의 말투를 이해해주지 못해서 죄송해요.'
'엄마의 사랑과 말투까지도 모든 게 사랑이에요!'
“엄마, 이제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힘들었던 마음이 말에 배어 있었다는 것이요. 저도 느껴요. 엄마, 아이들에게 더 다정한 말을 해주도록 힘을 실어주세요. 저도 엄마와 같이 노력할게요. 하늘에 계신 엄마, 감사하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