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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Jul 15. 2024

대필로 이어진 사랑

서로를 위한 존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6개월쯤 아버지는 자주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주셨다. 지인들에게 보내는 인사, 알림 글 등을 문자로 보내주시면 내가 수정을 해서 다시 아버지에게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와 문맥상 글이 매끄럽게 읽히는지 봐달라는 것이었다.

몇 번은 해드렸는데, 점점 횟수가 늘어났고 아버지가 지인에게 보내는 글은 모두 내 손을 거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글에 자신감이 없으신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일을 처리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고 불평불만이 고조되어 갔다.


어릴 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과거도 알게 됐다. 부모님이 계셔도 할머니 밑에서 자라셨고 부모님 품에 안겨 본 적 없었다는 것. 아버지는 부모님이 돌봐주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것에 대한 한이 있으셨다. 나는 아버지가 소년의 마음에서 머물러 계셔서 삶이 힘드셨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머니는 세 살 연상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내에게 의지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까지 검정고시로 나왔고 대학교는 중퇴였다. 그래서 더 배우지 못한 한도 있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70년대에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다가 형편이 어려워서 직장을 구하셨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거였다. 많은 아픈 사연 속에 선택한 직장 생활에서 아버지는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어머니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 추억이 별로 없다. 어머니는 손에 두꺼운 장부가 자주 들려있었고 병이 나서 누워계시면서도 앉아있을 때는 손에 장부가 들려있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들고 오신 장부를 어머니가 쓰고 있으셨다. 남편이 연필로 쓴 글 위에 볼펜으로 눌려서 쓰셨던 걸로 기억한다. 어릴 땐 그 모습에 어떤 의문 점도 없었다. 왜 어머니가 그 장부를 힘들게 쓰고 있었는지…. 먹고살아야 하는 일이기에 어머니가 도와주실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셨을까, 억지로 하셨을까, 해야 하니까 하셨을까?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써서 보내주신 글을 수정하면서 나는 어머니와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수정해서 보내달라고 한 메시지는 불만이 있었지만 내 한계치 안에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서전을 쓸 계획이라며 스무 장쯤 되는 자필로 쓴 종이를 찍어서 보내주셨다. 나는 아버지가 보내주신 글이 나의 한계치를 넘었다고 느꼈다. 한 자 한 자 컴퓨터 한글에 옮겨 적는데 싫은 걸 억지로 하니까 한 장 옮겨 적는데도 한 시간 이상은 걸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내용도 파악해야 하고 틀린 철자도 신경 쓰면서 쓰는데,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 마음은 피하고 싶지만 피하지 못하는 절벽에 놓여 있는 심정이 됐다. 아주 고통스러워서 절로 기도가 나왔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과거 상황을 생각해 봤다.


‘어머니도 아주 힘드셨을 거야. 얼마나 하기 싫으셨겠어!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면서 해야 하니까 하셨을 거야. 그것도 위하는 거야! 그것도 사랑이 아닐까? 그래, 그것도 사랑이야!’

나는 어머니가 남편일을 대신하면서 고생을 했고, 당신이 손으로 글을 쓸 수 없을 때까지는 남편을 위해 그 일을 하셨다는 걸 알기에 그것이 어머니가 남편에게 준 사랑이라고 느꼈다.

‘나는 아버지한테 엄마가 느꼈을 고생과 위하는 만큼은 아니었어! 내가 아버지한테 해드리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아버지가 오죽하면 아내에게 대신 글을 써달라고 맡기셨겠어! 얼마나 아버지가 힘드셨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머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의 답답한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아버지가 너무 안타깝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나도 아버지처럼 몰라서 못 던 것을 악착같이 해서 잘 하게 된 경우가 있어서, 그때의 아픔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답답한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아버지가 스스로 하고 싶어도 안 되는 고통이 절절히 내 마음으로 ‘확’ 들어왔다.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었다. 그 마음이 내 마음이 된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천사로, 천사에서 하나님으로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주신 스무 페이지의 종이를 들고 집중해서 글을 읽고 정리했다. 마음이 가벼워지니까 몇 시간 만에 글을 완성했다. 나 자신도 놀라운 일이었다.      

어머니의 마음과 똑같은 마음은 아니겠지만, 내가 어머니의 상황에 재현 자가 된 이유가 뭘까를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는 아내가 하늘나라에 가기 전까지 40년간 당신이 수발하셨다.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시며 돌봐주셨고, 요양원에는 가지 않겠다던 아내의 약속도 지켜주셨다.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젊은 시절 함께 사시며 남편의 손발이 되어준 것처럼 아내가 30대 후반부터 병이 들어 아내의 손발이 되어준 것도 남편이었다. 두 분은 서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달고 사신 듯했다. 그게 사랑이라고 말은 안 하셨지만, 나는 희생적 사랑이라고 느낀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물었다.

“엄마, 아직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늘나라에 가면 다 필요 없고, 사랑한 마음만 가지고 간대요.”

“이젠 없다! 미워하는 사람 없어.”

어머니가 아버지를 애증으로 느끼며 살아오신 세월을 안다. 하지만 떠날 때는 남편을 사랑한 마음만 가지고 가셨을 것이다. 그 마음은 수정처럼 맑다!


* 내가 아버지의 마음과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난 후부터 아버지께서 내게 대필을 맡기지 않으셨다. 틀린 철자가 있어도 그냥 자신이 쓰겠다고 하셨다. 이제 아버지도 자신감을 찾으신 것 같고 틀린 글자에 연연하시지 않으신다. 아버지의 그런 당당한 모습이 나는 더 좋다! 글자 좀 틀리면 어때서~~~~ 사랑이 더 중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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