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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얼 Dec 01. 2020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감정의 낭비가 일어나지 않는 소설


어떤 글이든지 서두를 기대하며 주목한다.

독자와 만나는 첫 페이지 - 담길 내용을 함축하거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암시하는 긴장된 손내밈이다.


“일주일째 눈이다. 나는 창가에서 밤을 바라보고 추위의 소리를 듣는다. 이곳의 추위에는 소리가 있다. 아주 특별하고 기분 나쁜 소리. 건물이 얼음 속에 끼어 짜부라지면서 끙끙대고 삐걱대는가 싶을 정도로 불안한 신음을 토해낸다. 이 시각 교도소는 잠들어 있다. 여기서 한동안 지내다 보면 이 건물의 신진대사에 익숙해져 어둠 속에서 교도소가 거대한 짐승처럼 숨을 쉬고, 간간이 기침을 하고, 뭔가를 꿀꺽 삼키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교도소는 우리를 집어삼키고 소화한다. 우리는 그의 배 속에 웅크린 채 번호가 매겨진 주름들 속에 숨고 위장의 경련들 사이에서 잠을 청한다. 그저 살 수 있는 대로 살아간다. ”
(본문 첫 페이지)


“아~ 이 글을 읽는 동안 작가의 언어 표현에 주목하게 되겠구나!”


책을 펼쳐 첫 장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첫 생각이었다.

예상대로 책을 덮을 때까지 감칠맛 나는 문장들에 연신 밑줄을 그어댔다.



소설의 구성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주인공이 1인칭 작가 시점으로 현재를 기반으로 과거를 드나들며 퍼즐 맞추듯 자신과 주변의 삶을 풀어내고 있는, 보통 작가들이 흔히 쓰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평범함 가운데 반짝이는 것!

그건 감정의 낭비가 일어나지 않는 공감대 형성이었다.

불운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타들어가지도, 눈가가 촉촉해지지도 않았고

소리 내어 웃거나, 서러움에 입가를 씰룩거리는 일도 없었다.

시종일관 잔잔하게, 흐트러짐 없이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이야기를 청종했다.

감정의 격한 동요 없이 한 소설을 발단부터 전개, 갈등, 위기를 거쳐 결말에 이르기까지 푹 빠져 읽을 수 있다는 건 매우 놀라운 일이다.


주인공 나 ‘폴 크리스티앙 프레데릭’ 은 캐나다 몬트리올의 보르도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1.5배의 덩치를 가진 ‘패트릭 호턴’ 은 나의 룸메이트이다.

덕분에 교도소에서 비교적 큰 방이라 ‘콘도’ 라 불리는 방에서 지내지만, 환경은 마찬가지로 매우 열악하다.

“사는 건 좇같고 그다음엔 죽는다.”

이런 문신을 등에 새겨 넣은 패트릭은 ‘할리 데이비슨’ 바이커에 열광하는 자로 갱단의 살인행위에 가담한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정작 나 ‘폴’은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결말 전까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패트릭은 나의 구금 사유를 듣고는 장인이 견습생의 어설픈 초기 습작들을 너그러이 봐주듯 내 사연에 호의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 일을 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어. 아주 잘했어. 확실히, 분명히 잘한 일이야. 나라면 죽여버렸을 텐데.”
(본문 중)


예상과는 달리 이렇게 교도소 룸메이트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살갑기만 하다.

그와의 이런 호의적 관계 설정이 독자를 안심시키고 날 선 감정을 도닥거려주었나 보다.

인간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이가 곁에 있으면 환경이 어려워도 충분히 버틸 수 있으니까...


나의 아버지 ‘요하네스 한센’ 은 덴마크 출신 개신교 목사였다.

그는 신앙이 없는 프랑스 여인과 결혼해서 나를 낳았다.

열두 살 즈음부터 종교에 심취한 나의 아버지는 모래에 묻힌 교회당, 신앙의 잔해를 보고 목사기 되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프랑스인 아내 ‘아나 마르주리’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영화상영관 ‘르 스파르고’를 열정적으로 운영한다.

한센 목사의 바램과는 어긋나게 결혼 후에도 그녀는 단 한 번도 신앙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도 역시 이제껏 신앙이 없다.

어느 날 ‘아나’의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포르노 영화 스캔들로 아버지 ‘요하네스’는 교회에서 해임당하고,

삐걱대던 부부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

이혼 후 아버지 한센 목사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캐나다 퀘벡 주의 탄광촌 ‘셋퍼드 마인스’에 있는 작은 교회로 부임한다.

둘 사이에서 ‘나’는 처음엔 엄마 ‘아나’와 지내다가

이내 아버지에게로 찾아가 정착한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경마와 도박에 빠져 타락해가고 추락하는 목사 한센 씨를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서 지켜본다.

이후 ‘나’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몬트리올 소재 고급 콘도 ‘렉셀시오르’의 관리자로 뿌리를 내리게 되고,

알곤킨 인디언의 자손인 아내 ‘위노나’ 와의 운명적 만남을 가진다.

그녀와 단 한 순간도 사랑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고백하는 ‘나’,

경비행기를 조정하는 그녀가 어느 날 길거리에서 데리고 온 애완견 ‘누크’까지 더해져 ‘나’의 삶은 잠시 충만한 가정의 행복을 누린다.

‘위노나’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급작스럽게 ‘나’의 곁을 훌쩍 떠날 때까지...


이상은 ‘나 - 폴 한센’의 가족관계에 대해 간추린 내용이다.

폴의 인생의 첫 축을 이루는 가족과의 첫 인생 이야기는

소설의 중간쯤부터 폴의 26년간 몸담았던 직장 ‘렉셀시오르’에서의 두 번째 인생으로 그 축이 옮겨간다.

폴은 그곳의 주민들과 부딪히며 겪는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 요하네스 목사를 회상하고 투영시켜볼 때가 많았으리라 여겨진다.

나의 가치와 존재감을 찾은 그곳에서 한 순간 몰락하고 비루하게 쫓겨날 수 있음을...

평생을 몸담았던 교회로부터 이탈되는 자신의 아버지 요하네스 목사처럼 말이다..


이렇게 세상적으로 볼 때 불운하기 짝이 없는 폴의 얼룩진 인생 이야기가

처절하지도, 비루하지도 않게

너무나도 차분히 설명되는 소설의 전개가 신선하고 감동적이었다.

참담하게 억눌린 감정 없이 깊숙한 공감으로 빠져들게 하는 주인공 폴의 인생 이야기!

그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일까?

이는 바로 작가의 개인감정을 걸러낸 노련한 필력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저자, 장 폴 뒤부아

작가 #장 폴_뒤부아는 1950년생으로 프랑스의 국민작가로 칭송받는다 한다.

이 작품으로 2019년 공쿠르상을 받았으며 이제껏 공쿠르, 페미나, 알렉상드르비알라트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실력 있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독자들 사이에서 묵직한 내용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풀어낸다는 호평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장 폴 뒤부아 Jean-Paul Dubois

1950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프랑스의 국민작가이다. 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 여행기를 펴냈다. 장편소설로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1996년 프랑스 텔레비전상 수상작 『케네디와 나』를 시작으로 2004년에는 『프랑스적인 삶』으로 프랑스 4대 문학상인 공쿠르상, 페미나상, 르노도상, 앵테랄리에상 후보에 동시에 오르며 제100회 페미나상을 받았 다. 이후 2012년 『스나이더 사건』으로 알렉상드르비알라트상을 수상하고, 2019년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로 공쿠르상을 거머쥔다. 그 밖의 장편소설로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1999) 『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2006) 『남자 대 남자』(2007) 『이성적인 화해』(2008) 『상속』(2016)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독자들 사이에서 묵직한 내용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풀어낸다는 호평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렇다!

과연 처음 맞이한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평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가계의 암울한 역사가 숙련된 장인의 손을 거쳐 신비한 무늬를 입고 우아하게 재탄생한 듯했다.


교도소 밖 콘도와 교도소 안 콘도를 넘나들며 자근자근 풀어내는 폴의 인생 이야기.

만남과 이별, 선과 악, 그리고 그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언저리에서

이제 망자가 된, 그가 사랑했던 가족들을 가슴에 품고서...

아직 그의 곁에 있는 그의 편 키어런 리드, 패트릭 호턴 그밖에 새로 만나는 누군가와 더불어 꾸려갈 그의 인생!

그의 삶은 그리 밝기만 하지도, 그리 어둡기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독자인 우리 모두가 맞닥뜨릴 인생도 역시 그럴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글쓰기를 흉내 내고 싶어 졌다.

영화 필름 돌아가듯 장면 장면이 생생히 그려지는 탁월한 묘사를 옮겨 적으면서 몇 번이고 읽고 따라 하기를 시작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모든 창조는 모방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그리지는 않으니까~~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듯이!!


겉표지 사진


#창비출판사 의 출간 전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가제본을 읽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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