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얼 Apr 18. 2024

님은 먼 곳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래방에서 K는 목놓아 불러댔다.


“님은 먼 곳에~ 영원히 먼 곳에~~“

“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


가슴이 울컥! 눈물이 핑 돌고 코끝이 시려졌다.


K가 초등학생 시절 가수 김추자는 신화적 존재였다.

그녀의 몸짓, 음성, 표정 하나하나가 K의 오감을 자극했고

텔레비전 앞에서 그런 그녀를 흉내 내보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한 ‘김추자 따라 하기’를 반백년 이상 지난 엊그제 느닷없이 소환했던 거다.

전주시의 한 노래방에서..


K는 노래방문화가 낯설다. 평생 음주가무를 즐기지 않고 살아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혹시라도 빗나갈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지 않았던 것뿐이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K의 잠재된 기질을 누르고 절제하며 사는 게 삶의 미덕이라 여겼던 듯하다.

대학시절 연극반 동아리활동도 2년 빠짝 하다가는 어물쩍 물러서고

졸업 즈음 국립극단에 입단, 연수과정을 마치고 정식 배우가 되기 바로 전 학교 측의 제안을 받고 중학교 교사로 전환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도 그만두고 결혼을 했고

이후 공부하는 남편의 아내로서, 두 딸의 엄마로서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러다 50대 후반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때때로 해외여행도 다니고 음주도 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문화가 즐거웠고 잠재된 K의 감성이 글쓰기로 표현되고 적극적 수용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이웃을 만나고 교제의 폭이 넓어지면서 마침내 편안한 맘으로 ‘飮酒歌舞‘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이런 K의 어설픈 인생스토리가 그녀의 몸짓에 절절히 담겼던가보다.

끝까지 마다하는 K에게 노래 선곡을 강청하는 동반자들의 권유에 못 이겨 떠올렸던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이 노래를 부르는 3분여 동안  K는 그녀만의 감회에 푹 빠져들었던 거다.

여행친구들은 일제히 환호의 박수를 쳐주었고

그중 한 이는 동명의 영화 <님은 먼 곳에>에서 불렀던 수애의 노래를 보여주며 훨씬 더 감동적이었노라 칭찬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녀가 애절하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이리 사진으로 담아주었다.


먼 곳에 있을수록 애틋함이 더해지는 님!

그 님을 찾아 인생길 굽이굽이 돌고 돌아왔기에 더욱 절절한 감회!

이제 나의 님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음을 깨달아 알기에

망설이지 않고 가까운 데 있는 님을 온 맘 다해 꼬옥 끌어안고 살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꽃. 나비. 여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