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번 살아도 여전히 실수한다는 게 함정
엄마는 처녀시절 재봉공장을 다녔다. 덜렁대고 진득하지 못한 엄마의 성향과 재봉은 지금 봐도 그다지 맞지 않는 종목이지만, 중졸 학력의 여성이라면 무난하게 선택했을 시대의 직업이었다. 흘러가듯 취직하고 흘러가듯 선을 보고 흘러가듯 결혼하고 아기를 낳은 엄마는 아기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서,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어쨌든 혼란스러운 엄마 덕분에 그 아기는 어려서부터 인테리어 홈패션 책을 보며 자라는 영광을 누렸다. 엄마는 사실 그림에 소질이 있었지만 그다지 취미가 있어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다소곳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하고 자기가 아는 걸 알려주는 활달한 일을 좋아했다. 타고난 손재주를 갈고 닦았으면 뭐라도 하나의 재능인이 되었을법한 귀한 재주지만, 대부분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가 그렇듯이 엄마도 엄마의 손재주가 그렇게 대단해보이지 않았나보다. (잠깐 잡담, 내 주변에 동물적 감각이라고 여겨질 만큼 관찰력과 묘사력이 좋은 재주꾼들이 있는데 그들은 그림을 안 그린다. 오히려 그림을 계속해도 될까 싶은 걱정스런 친구가 그림을 그리는데, 신기하게도 그림을 계속 그리면 평범한 그림에 매력이 점점 늘어난다. 놀랍다. 그 때마다 타고난 재능은 있지만, 타고난 재능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걸 느낀다.) 그래서 엄마는 서툴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개척해 나갔다. 물론 그 개척길은 험난했다. 엄마가 개척한 길이 하필이면 다단계였고 나는 집이 망한다는 것이 가정이 무너진다는 것이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너무 어린나이에 알아버렸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진 않아도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니었다. 아빠가 외벌이였지만 대리점 사장님이었고 외식도 자주하고 주말이면 온천이며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런 삶에 서서히 균열이 가고 잠식당하고 결국 깨져버렸다. 그 때 나는 엄마를 너무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그냥 집에 있으면 우리집이 망하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왜 돈을 벌려고 한 걸까. 돈이 그렇게 벌고 싶으면 얌전히 월급 받는 일을 했으면 될 텐데. 왜 힘들게 하나를 팔아야만 이윤이 남는 장사를 해가지고 고생을 할까. 고생을 해서라도 장사가 하고 싶었으면 간판을 달고 정상적인 장사를 하지 왜 다단계에 들어서 가정도 파탄내고 주변에도 민폐를 끼쳐서 욕먹는 이렇게 실속 없는 결과를 마주한 거지? 도대체 왜?
엄마가 자식들에게 소홀한 건 서운했지만, 엄마의 이유가 성공적이었다면 나도 오빠도 그 서운함을 엄마에게 협조했음으로 승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실패했고, 우리의 삶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 이후로도 엄마는 재기를 노리고 한 번 더 다단계에 휩쓸렸지만 실패했다. 나는 다단계는 결국 실패로 갈 수밖에 없으니까 실패했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그 때마다 엄마가 부족해서 실패했다고 자책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자기 자신을 몰아 부쳤다. 나는 엄마가 안쓰럽지만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 답답했고, 스스로 방향을 바꾸기까지 기다리는 게 너무나 지난했다. 그래서 유년시절 엄마와 나는 부딪힘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나는 부딪혔고 오빠는 회피했다. 남매는 다른 방식으로 엄마와 틀어졌다.
지금의 엄마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적어도 간판을 달고 장사를 하고 있으며, 다단계는 안하지만 절간의 신도들을 모으고 연결해 주시긴 한다. 종교 활동은 사회적으로 공인된 활동이니 나도 색안경을 끼고 엄마를 나무라지 않는다. 물론 내 기준에서는 엄마가 절에 헌신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자꾸 다단계회사의 CEO우상화가 떠오른다.) 그래도 그게 엄마가 이바지한 공동체생활의 기쁨이라니 존중한다. 엄마는 그 곳에서 연결되고 만족감을 얻어서 하루를 또 힘차게 살아가는 것 같다.
내가 우리엄마 이야기를 왜 이렇게 구구절절 적냐면.... 내가 미니멀라이프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엄마와 갈등을 설명해야 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우리를 어느 정도 키우고 다단계사업에 뛰어들던 그 시점부터 나도 기억이 난다. 그 전에 엄마가 살신성인 열심히 육아했을 그 시절은 기억에 없고(엄마 미안;) 홈패션 책을 읽으면서 우리집도 이렇게 예쁘게 꾸밀 수 있을까 상상하던 그 시절부터 기억이 난다는 인생의 오묘함. 엄마가 사업에 뛰어들고, 마침 할머니도 중풍으로 알아 눕고 외할머니도 홧병으로 알아 누웠다. 엄마는 사업아이템이 두 할머니를 고쳐 줄거라고 믿고 열심히 건강식품을 사다 날랐지만, 크게 효험 없이 할머니들은 투병하다가 돌아가셨고, 그러는 동안 엄마의 빚은 쌓이고, 나와 오빠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집안 꼴은 늘 말이 아니었고 아빠와 엄마는 싸우는 일이 잦았다.
그냥 그 때 엄마가 잠시라도 멈추고 마음을 비웠으면 어땠을까? 뭔가 모르게 홀려서 끌려가는 힘을 끊어내고 왜 내가 이렇게 힘든지. 부모님의 병이 꼭 나아야만 하는지. 지금 내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이들의 표정이 왜 그런지. 봤다면 어땠을까. 어린 내가 생각한 것처럼 차라리 아무것도 안했다면 어땠을까?
쉽지 않다는 거 안다. 나도 아이 하나 키우지만 사는 게 전쟁이다. 육아가 전쟁이란 말이 아니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불안과 조바심과 싸우는 게 전쟁이다. 엄마도 그랬을 것 같다. 엄마는 배운 게 적었고, 우리는 커가고 엄마는 뭐라도 우리에게 보여줄 당당한 무언가를 갖고 싶었을 것이다. 내 마음이 그렇다. 나는 엄마에 비해 배웠지만 앞으로 커갈 내 아이에 비해 너무 부족하다. 엄마가 뭘 알아야 가르쳐줄텐데 싶어서 엄마 마음에 괜시리 조급하다.
그런데 그 때 나는 그냥 엄마가 필요했고, 엄마의 밝은 얼굴이 보고 싶었다. 엄마가 해주는 칭찬과 엄마의 손길이 그리운 마냥 어린 아이였을 뿐이다. 지금 내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도 그렇지 않을까. 엄마가 유능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만약 최악의 순간이 오더라도 내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건 나의 밝은 얼굴이 아닐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은 믿어볼만하다.
나는 사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 강한 사람이다. 내 안에 엄마의 기질이 많다는 거 안다. 피를 속일 수 없는지 남편도 가끔씩 장모님이랑 똑같다며 놀릴 때가 있고 친척들도 가끔 ‘너 나이드니 숙모랑 얼굴이 같다’며 놀라워한다. 사실 그런 말이 너무 싫지만, 나도 안다. 엄마의 낙천적 성격과 활달함을 닮지 않았다면 나도 이 많은 역경을 견디지 못했을 것임을. 엄마는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 받지만 또 작은 일에도 쉽게 기뻐하는 아이처럼 환기가 잘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단계같은 사기업체들이 엄마를 공략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젊은 날 삶의 주체로서 화려하게 살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나는 그런 엄마의 삶을 보면서 엄마의 기질을 엄마와 다르게 써보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것도 엄마 덕분에 인생을 2번 사는 기분이다. 근데 인생을 2번 살아도 실수하고 실패하긴 마찬가지더라. 대체 인생을 몇 살아야 수월해질 수 있을까.
마무리가 이상한데, 그래서 내가 미니멀라이프를 선택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엄마다. 엄마와 다르게 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