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물의 잔해

나 변신하는 중인데 왜 안기다려 주세요?

by 속눈썹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은 왜 그렇게 변신을 많이 하던지. 몇 가지 악세사리 더 달았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주변 인물들은 주인공을 못 알아보고 덕분에 주인공은 자유롭게 히어로짓(?)을 하며 악당을 물리친다. 그리고 평화로운 일상에 일조한 것에 대해 비밀에 부친다는 마무리까지. 어쩜 주인공은 끝까지 쿨하고 멋질까! 비록 일상에선 비루한 범인이지만, 알고 보면 히어로인 걸 주인공 빼곤 다 모른다는 건 정말 짜릿하다. (그 비밀을 비록 나만 아는 건 아닐지라도.)

주인공은 언제든 히어로가 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마음만 먹으면 되는데, 악당을 마주치지 않으면 굳이 변신할 이유, 즉 '건수'가 없으니까 지금 평범한 것뿐이다. 주인공은 변신 할 때가 되면 변신한다. 지금은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척 할 뿐. 그러고 보니 나도 완전 평범한데... 그럼 혹시 이토록 평범한 건 내가 히어로의 사명을 띠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정말 주인공이라면 악당을 물리쳐야 되는데, 악당이 어디 있지? 그래. 일단 내 마음을 괴롭히는 악당을 물리치자! 나는 히어로니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자 그런데 뭐라고 외쳐야 변신하지?

만화영화와 현실의 간극은 '변신' 때문에 발생한다. 만화를 비롯해 많은 서사들은 극적인 전개를 추구한다. 감정의 동요가 클수록 몰입이 잘되고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성인물이야 피, 섹스, 권력 등 자극적 소재를 활용할 수 있지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만화영화에서는 기껏해야 변신이 아니었을까. '우와! 어른이 되었어.' '우와! 예뻐졌어.' '우와! 마법을 부려.' '우와! 전사복을 입고 마술봉을 휘둘러.' 등등의 기존의 모습과 확연한 차이가 나는 '변신' 말이다.

문제는 성인이 된 지금의 나도 그런 변신물 판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했던 대로 나는 내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히어로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물론 마음을 먹는 건 좋다. 악당을 물리치자는 정의로운 취지도 좋다. 하지만 급격히 짧은 시간 안에는 불가능하다. 변신히어로는 아이들에겐 판타지이지만 어른에겐 거의 사기다. 왜냐면 어른들은 옷 갈아입을 시간도, 퍼포먼스 할 동작도 생각하고 위급한 순간에 대한 시간개념도 빠르기 때문에 나를 공격하는 악당 앞에서 한가로이 변신하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상상한다. 변신하는 동안은 시간이 멈추거나, 혹은 변신하는 동안은 악당에게 공격받을 수 없는 룰이 있다고. 그리고 그 시간은 눈 한 번 깜짝일 만큼 아주 빠르다고. 그런 믿음을 갖고 큰 나 같은 아이는 세상에 이렇게 반문하기도 한다.


나 변신 중인데 왜 안 기다려 주세요?

커서 생각해보니 어릴 때 주입받은 이 변신물에 대한 환상이 실행력에 악영향을 끼쳤다.


첫째, 변화는 그렇게 순식간에 일어날 수 없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더욱 더. 부단한 시도와 실패, 성공의 반복이 있어야 서서히 조짐이 보인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조금씩 변한다. (아기의 성장과정만 봐도 납득이 간다. 얼마나 많은 뒤쿵이 앞쿵이 심지어 옆쿵이까지 했던가) 자연의 신비를 초속으로 돌린 화면을 보며 우린 경이로워하지만, 정작 눈앞에 새싹을 보고 탄성을 지르지는 않는다. 둘 다 성장하는 건 같은 원리인데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건 변하는 모든 것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애벌래가 나비가 되는 건 마치 놀라운 변신 같지만,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오는 건 나비 일생에 가장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변화에 걸리는 시간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지자.

둘째, 변화는 기존의 나를 토대로 성장한다. 내게 좋은 습관을 붙여 좋은 태도를 기르는 과정에 변화가 생긴다는 말이다. 그런데 변신은 기존의 나를 지우고 다른 나를 만든다. 그래서 변신하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기존의 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로봇으로 치면 '개조'같은 느낌이다. 정말 기존의 나를 버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양을 다듬어 ‘개선’해 나가야 한다. 변신물에서는 변신 후 능력치를 월등히 높여서 기존의 자아를 무력하게 묘사하는데 나는 그게 과거를 부정하고 새것을 추종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건 개조가 아니라 개선이지 않을까?


셋째, 내가 히어로인 걸 사람들이 알아도 된다. (쿨하고 싶다는 허세만 버린다면) 평범했던 내가 히어로처럼 선한 행동도 시작했다는 걸 나도 알고, 세상 모두가 아는 순간 '개선'이다. 나는 그대로이지만 다른 내 모습이 덧붙여지는 것. 그게 리얼이다. 사람들 몰래 하려고 하는 순간부터 기존의 나는 부정된다. 스스로 자기이미지에 한계를 주는 것이다. 사실 변화는 티가 안 날래야 안날 수 없기 때문에 감출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의뭉스런 너구리처럼 굴속에 들어가지 말고 아침이면 지저귀는 새처럼 세상에 나오자. 변화는 나보다 나를 보는 사람들이 더 빨리 눈치 챈다.

내가 변신물이야기를 왜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늘여 쓰냐면... 사실 내 마음 속에 나의 미니멀라이프 도전기가 내 인생의 멋진 변신이길 바라는 허세가 있어서다. 그 허세 좀 버리고 싶어서 툭 까놓고 쓴다. ‘나 사실은 잡스만큼 심플하고 달라이라마처럼 평화로운 그런 사람이야.’ 라고 변신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살아온 이 날 동안, 만족스러울 만큼 심플하고 평화로운 적이 없었다. 그럼 나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건데, 왜 그게 너무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미니멀리스트로 뚝딱 변신하고 나서 '나 좀 멋지죠?'하고 칭찬 받고 싶은 마음 뿐 인건가. 아 내가 쓰고도 부끄럽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변신물의 잔해를 분석하고 나에게 서서히 드러나는 변화를 추구하자고 독려하는 중이다. 아마도 이어질 이야기는 그런 변화의 이야기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변화를 기록하려 한다. 혹시 나처럼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지만 늘 마음에만 담아두는 독자가 있다면 나와 함께 동행해주길 청한다. 나도 미니멀라이프를 향한 짝사랑은 오래되었지만 숱한 실패를 겪었던 사람이다 보니 하다하다 결국엔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에세이가 끝날 때까지 내가 정말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이유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마음먹었고 시작할거다. 나는 더 이상 변신물이 흥미롭지 않다. 오히려 작은 변화에 관심이 많은 어른이 되었다. 내가 놓아야 할 건 조바심이요. 놓치지 말아야 할 건 꾸준한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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