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해서 하면 다를것 같죠?
나의 20대 자기소개서는 '안녕하세요. 작가지망생 아무개입니다.'로 시작했다. 내 정체성을 소개하기에 이보다 편한 수식어가 어디에 있을까. 작가지망생. 작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가와 전혀 무관하지도 않은 언젠가는 작가가 될 사람이라는 포부까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작가지망생이란 타이틀을 무기로 작가라는 꿈을 오래도록 유예한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전전하던 어느 날. ‘그래! 난 작가가 되겠어.’ 라고 선언하자 주변 친구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물었다.
"그건 언제 되는 거야?"
사교육이 판을 치고 있어서 학습에 아카데미가 당연한 세대. 무엇을 배우던 간에 준비기간이 길수록 확실히 익힐 수 있다고 세뇌 되었던 만큼, 그런 질문이 어색하지도 않았다. 분명 관련한 공부를 해야 할 테고 그럼 대학교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걸릴 수도 있는데... 그동안 너 밥벌이는 어떻게 하냐는 우회적인 질문이었다. 당장은 어렵지만, 3년 정도 수련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예상한 시간은 그 정도였고, 어느 분야의 창작을 해서 작가 타이틀을 딸 것인가는 자연스럽게 '만화'분야로 정했다. 만화를 즐겨보진 않지만, 중학생 때 만화동아리도 만들었고, 고등학교 때는 만화학과 진학하는 게 목표였으니까. 성인이 되어서도 만화의 판타지감성을 좋아하는 터라 가장 걸맞다고 판단했다.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내겐 애정이 있잖아. 이까이꺼 뭐. 쉽지.
오판이었다.
'만화'만큼 1인이 할 수 있는 종합예술이 또 있을까. (가끔 독립애니메이션을 만들거나 독립다큐를 만드는 감독들을 보면 겸허해지기도 하는데, 어쨌든) 스크롤 한 번, 페이지 한 장 넘기면 금세 사라지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몇 날 몇 일을 고민하고 그리고 고치고 망치고 복구하고 새로 하기를 반복하면서 이건 정말 절대 내가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짝사랑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내 20대가 망해버릴 것 같고 사회적 타이틀은 아무것도 없이 골방에서 만화를 그렸다고 소심하게 말하는 게 너무 싫었다. 불확실한 내일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건 하고 싶은 욕구, 좋아한다는 고백만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당시 영리하지도 않고 용기도 없어서 불같이 자신을 몰아 부치고는 물같이 흐느적 흩어져버렸다.
"작품은 어떻게 되고 있어?"
간간히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아직, 자료수집 중이지.'라는 뻔한 대답이 레파토리가 되었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시작한 스토리공부는 나를 더 쪼그라들도록 했다. 특강을 쫓아다니며 잘난 작가의 강연이나 수업을 들어보면, 작가들은 정말 사람들 머리 위에서 노는 것처럼 심리에도 사회문제에도 철학에도 심지어 신비주의까지 박학다식 여러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고작 '나'를 비롯한 문제밖에 관심이 없는데, 나와 다른 범주에 사는 큰 사람들 같았다. 그래서 부족한 내 생각을 드러내는 게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이 상태로 작가가 되면 밑천이 금방 드러나겠어! 단단한 작가가 되려면 작가지망생을 좀 오래해야지. 그런 마음을 먹고 나자 좀 편안했다. 더 이상 벼랑 끝이 아니라 잔디밭을 밟는 기분으로 이것저것 다른 일도 건드리고 호기심 가는대로, 때론 흘러 가는대로 살 수 있었다.
꿈은 있는데 지금은 도전 안 해. 해보니까 쉬운 게 아니더라고. 내가 충분히 갖춰지면 그 때하려고.
나는 멋진 답변을 준비하고 친구들이 내 작업을 물어봐주길 기다렸다. 그런데 친구들은 내 상태를 어찌 알았는지 더 이상 작업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나도 머쓱하니 내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으면서 자연히 나는 '작가지망생'이었던 아이로 남겨졌다.
“그래서 이 짝사랑의 결말은 새드인건가?”
“노노. 유예한다는 건 끝난다는 게 아니지. 나는 끝까지 도전할거야. 지금은 내가 너무 부족해서....”
“그래서 일단 시즌1의 결말은 새드인건가?”
“오. 시즌1 괜찮은 개념인데. 그럼 새드로 인정하지.”
“그렇군. 근데 자네 그거 알고 있나.”
“뭐?”
“시즌2가 나오려면 관객이 확보되어야 하네. 자네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아니 관객 없이 그냥 조용하게 나 혼자 시작하면 안 될까. 어차피 이건 1인 예술이고 돈이 드는 것도....”
“혼자 할 수 없어. 너는 이미 혼자가 아니야. ”
“왜? 어차피 난 사람 쓸 돈도 없는데.”
“네가 작업을 하려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 넌 아기엄마야. 지금 그 포지션에서 작업시간을 확보하려면 너 혼자 고군분투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 그게 그렇게 너의 만족을 위해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는거 라면 굳이 지금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더 미뤄. 더더. 더더더.”
“그건 안 돼!!!!”
잠에서 깼다. 나는 20대 시절에 분수에 맞지 않은 '작가지망생'이란 과분한 선택을 해서 내 손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슬퍼만 했는데, 돌이켜보니 20대여서 할 수 있었던 배짱이었다. 지금은 딸린 식솔들을 우선으로 챙기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치밀함과 눈치 그리고 신파에 가까운 호소가 필요하다. (30대를 먼저 겪고 20대를 겪으면 20대를 더 알차게 살았을 텐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작가지망생'이 더 힘들어야 되는데, 기운이 난다.
'엄마'를 준비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적용하고, 반성하기를 거듭 반복한다. 그 에너지가 '작가지망생'에도 가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급하고 시간 없고 가진 건 여전히 바닥이지만, 그 와중에 글을 쓴다. '작가'를 준비하지 않아도 하루하루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창작을 고민하니 '작가'가 해야 할 일이 보이고 그것을 실천하고 반성하기를 거듭 반복하면서 마음만은 '작가'로 살고 있다. 언젠가 이 노력들이 결실을 이루어 사람들이 '작가'라 부르는 사람이 되면, 나는 '작가지망생'에게 준비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말하고 싶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실행이 만든다는 이승희작가의 통찰력을 빌려서. *<기록의 쓸모 이승희 저자의 세바시 강연 중>
아. 그리고 이 방대한 이야기는 사실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지 말고 그냥 단순하게 살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있을 거라고 격려한다.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