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국가라는 거대 서사와 우리라는 소수
소설은 21세기 벽두의 거창한 풍경으로 시작한다. 남북 정상이 악수를 나누고, 화려한 가요계의 연대기가 흐르며, 한 시대를 풍미한 아이돌의 무대가 지상파를 가득 채운다. 세상은 이 화려한 장면들을 '국가'와 '시대'라는 이름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그 거창한 '인터내셔널'의 기록 어디에도 서울 동북부 중학교의 진주와 니콜라이의 이름은 없다. 그들은 졸업 앨범의 단체 사진 속에서조차 정중앙을 차지하지 못한 채, 프레임의 양 끝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서 있다. 중심부로 진입하지 못하고 세상의 가장자리로 자꾸만 밀려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두 사람. 여기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라는 제목은 지독하게 역설적이다. 국가가 보듬지 못한, 혹은 국적이라는 경계에서 미끄러지는 이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결성한, 세상에서 가장 작고 초라한 연맹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잃어버린 '수혜'의 폭력
진주를 향한 담임교사의 조언은 '배려'의 얼굴을 한 소외다. "2등급만 받으면 훨씬 유리해"라는 말은 진주를 한 명의 고유한 학생이 아니라 '기회균형'이나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는 행정적 데이터로 치환해 버린다. 롤케이크를 들고 감사 인사를 전하러 온 졸업생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교사의 무관심은, 시스템이 약자를 대하는 전형적인 방식을 노출한다. 그들은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분류될 때만 잠시 존재 의미를 얻고, 그 분류가 끝나면 다시 무명(無名)의 존재로 돌아간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사회에서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국가장학금 홈페이지의 모니터에 얼굴을 밀착시켜야 하며, '통상임금'과 '기본급'의 복잡한 한자어 사이에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만 한다.
가성비라는 감옥, 부러움이라는 자기혐오
성인이 된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가성비'의 문법이다. 국밥 몇 그릇으로 세상의 가치를 환산하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낮은 가격 순'으로 필터를 걸어 가구를 고른다. 이 가성비의 알고리즘은 단순히 경제적인 선택을 넘어 삶의 취향과 욕망까지 미리 검열하게 만든다. 부드럽게 굴러가는 고급 유모차 속 아기의 천진난만한 웃음에서 아기의 미래를 읽어내고, 그것을 부러워하다가 끝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는 진주의 감정은 뼈아프다. 평범한 20대처럼 보이고 싶어 노트북에 스티커를 붙이고 도서관을 찾지만, 그 기분을 누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커피값'조차 억울해져 20분을 걸어 공립도서관으로 향할 때, 그들이 누리는 평범함은 결코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뼈를 깎아 연출해 낸 고단한 연극이 된다.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
소설 속에서 묵직하게 가슴에 다가오는 문장은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는 물음이다. 결석 한 번 안 했고, 법도 어기지 않았으며, 공과금도 기한 내에 꼬박꼬박 냈다. 하루의 삼분의 일에서 이분의 일을 일터에서 성실히 보냈고, 남의 차 전조등을 만들고 하루 이만 보를 걷는 노동을 기꺼이 감당했다. 「무겁고 높은」에서 송희가 바벨을 들 듯, 그들도 각자의 삶의 무게를 온 힘을 다해 지탱해 온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의 삶은 여전히 '이사 사이의 잠시 머무르는 상자' 속에 담겨 있어야 하는가. 왜 집은 정착지가 아닌 임시 거처여야 하는가. 이 질문은 개인의 성실함만으로는 결코 메울 수 없는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절규다. 잘못 산 것이 아니라, 아무리 정직하게 살아도 도달할 수 없는 '평범함의 입장권'이 너무 비싸게 책정되어 있다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다.
폐허 위에 핀 망하지 않는 사랑
작가는 '망해버린 연애들'과 '사라진 나라들'을 교란하며 나열한다. 역사 속의 수많은 인터내셔널(국제 연맹)이 무너지고 한 나라가 폐허가 되듯 개인의 연애사도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종말로 남는다. 하지만 김기태 작가는 그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발굴한다. "연애가 망하더라도 사랑은 망할 수 없는 것"이라는 문장은 이 소설의 구원이 된다. 여기서의 사랑은 낭만적인 연애 감정을 넘어서는, 서로의 존재에 대한 지독한 긍정이다. 서로의 등을 보며 설거지를 하고, 먼지 쌓인 바닥을 함께 닦으며, 조립식 식탁을 맞추는 '일상의 곁을 지키는 구체적인 행위'가 바로 그 사랑의 실체다.
'피자나라 치킨공주'라는 다소 촌스럽고 기묘한 이름을 가진 가게의 배달 음식을 기다리며 "왜 피자나라 치킨공주일까"를 묻고 유쾌해지는 찰나. 현관문 바깥이 아주 바깥은 아니라는 사실. '우리'라는 완충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그 좁은 거실. 그곳이 바로 그들이 세운 새로운 공화국,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다.
예언을 빗나가게 만드는 힘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들어있고, 몇몇 퇴근길은 형벌처럼 무겁다. 보일러를 아껴 틀어야 하는 겨울의 한복판에서 그들은 여전히 가난과 불안을 산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안다. 세상이 정해놓은 예언(너희는 배려 대상자라는 낙인)은 빗나갔거나,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따뜻한 형태로 실현되었다. 중심에 서지 못했기에 서로의 가장자리를 붙잡을 수 있었고, 화려한 영광을 얻지 못했기에 작고 확실한 행복을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모순적인 기억들을 뭉쳐 눈밭에 굴리며 나아가던 맹희처럼
94kg의 무게를 들어 올리고 비로소 단정한 마음으로 목도리를 여미던 송희처럼
진주와 니콜라이도 자신들만의 속도로 흐를 것이다.
"여름이었다"라고 정리할 수 있는 찰나의 뜨거움을 간직한 채
그들은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낼 것이다.
그 성실한 생존이야말로
김기태 작가가 우리 시대의 모든 조맹희와 곽, 송희,
그리고 진주와 니콜라이에게 보내는 가장 열렬한 응원이다.